[혜윰노트] 낙인 찍을 장발장을 찾는가

국민일보

[혜윰노트] 낙인 찍을 장발장을 찾는가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입력 2020-09-25 04:02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작이다. 영화나 뮤지컬 등으로 많이 각색돼 줄거리는 모두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원작은 민음사 완역본을 기준으로 2500쪽이 넘는 볼륨을 자랑한다. 모두가 내용을 알고 있지만 실제 전문을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고전의 정의를 충족한다. 개인적으로 여유가 있어 근래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을 기회가 있었다.

방대한 소설을 축약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줄거리 핵심은 예수에 비견되는 장발장의 불행한 인생이다. 그의 일대기는 위고가 말하고자 했던 사회적 부조리와 인간애적 사상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장발장은 부모 없이 아홉 남매를 건사하고 있다. 굶주림에 못이긴 그는 유리창을 깨고 빵 한 조각을 훔쳤다. 손이 들어갔을 뿐이지만 ‘야간 가택 침입’과 ‘절도’로 인정돼 5년형이 선고된다. 그나마 가계를 지탱하던 장발장의 투옥으로 가족은 풍비박산난다. 장발장은 남겨둔 동생들 때문에 네 번의 탈옥을 감행하고, 그때마다 잡혀 도합 19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감옥에서 나오자 중죄인이라며 모든 사람이 그를 피했다. 추위에 돈이 있어도 밥을 주지도 않고 재워주지도 않았다. 그는 절망감에 허허벌판에 들어갔고 문득 자기 발 앞으로 굴러오는 은전을 본다. 한 소년이 무심코 흘린 것이다. 장발장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밟는다. 그리고 발을 떼 주지 않는다. 이것으로 그는 무기징역이 확정된다. 중죄인이 사회로 나와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장발장은 탈옥 후 많은 돈을 벌어 사람들을 먹여살리면서 모든 것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지만, 자베르 경감의 평생에 걸친 추적을 받게 된다.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을 대신해 옥살이에 들어가기도 하고, 중노동을 하다 남을 구하고 도망쳐 죽기 직전까지 쫓기는 삶을 산다. 방대한 소설에서 위고가 독자들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내용은, 과연 장발장은 그토록 평생을 불행하게 살 만큼의 중죄인이냐는 것이다. 왜 사회는 장발장에게 극단적으로 가혹한가. 고작 빵 하나와 은전 한 닢을 훔친 사람을 공권력이 악착같이 찾아내 정해진 형법을 집행하는 일이 맞는가.

위고의 작품 세계는 복잡다단하게 변화했고 정치 노선도 바뀌었지만 평생 인본주의만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핵심이 된다. 그는 사형제도에 반대했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했으며 인간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 아파했다. 소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죄질이 나빠도 처벌하지 않으나 선량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원천적으로 기회를 차단하는 역설적인 형법과 군중의 색안경을 은유한다. 인간과 죄, 영원히 그에게 남아버리는 낙인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레 미제라블’이 발표된 지 158년이 됐지만, 우리에게도 아직 장발장은 많다.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간은 법을 만들었다. 죄를 짓더라도 죗값을 치르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인간은 형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타인이 찍는 낙인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공인이건 공인이 아니건, 정말로 죄를 지었건 죄를 짓지 않았건 사람들의 낙인은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폭로와 폭발적인 비난, 평생을 따라다니는 멍에를 자주 목격한다.

위고가 그린 것처럼 낙인을 찍는 일 또한 인간의 본성인지 생각한다. 자신이 아니라면 모두 타인인 세상에서, 차별과 선악의 재단이야말로 가장 선명하고 편리한 피아 구별인가. 하지만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가 저지른 잘못조차 각자의 본위로 해석하는 일은 위험하다. 나는 죄를 미워한다. 하지만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는 우선 반대한다. 그것이 인간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인간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누군가에게 낙인이 찍힐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레 미제라블’은 불어로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장발장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