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추미애와 소설 논쟁

국민일보

[세상만사] 추미애와 소설 논쟁

김경택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9-25 04:02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 복무시절 의혹과 관련한 정치권의 공방에는 소설가들까지 소환됐다. 발단은 추 장관의 “소설 쓰시네” 발언이었다. ‘현 법무부 차관이 서울동부지검장 시절 이 사건을 잘 처리해준 대가로 영전한 것 아니냐’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추 장관이 발끈하며 던진 말이었다. 이에 야당 의원은 “우리가 소설가입니까. 국회의원들이?”라고 되받아쳤고, 추 장관은 “질문도 질문 같은 질문을 하세요”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7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벌어진 설전이었다.

소설가 단체인 한국소설가협회는 “많은 소설가들은 놀라움을 넘어 자괴감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추 장관에게 공개 해명을 요청했다. 협회는 “소설에서의 허구는 거짓말과 다르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상대방(독자)이 이미 알고 있으며, 이런 독자에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믿게끔 창작해 낸 예술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재미있는 소설 한 편 잘 읽었습니다”라며 추 장관을 비꼬는 페이스북 글을 쓴 야당 의원도 문제 삼았다. 협회는 “더 이상 정치권에서 ‘소설’을 희화화하지 말고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우리들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학계에선 소설 쓴다는 말에 ‘없는 사실을 지어내 거짓말하다’라는 뜻도 있다는 점을 들어 “협회의 성명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추 장관이 야당의 의혹 제기를 거짓말로, 도를 넘은 정치공세로 보고 “소설 쓰시네”라고 일갈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었다. 협회가 보수 진영에 치우쳐 추 장관을 공격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문인들도 있었다. 추 장관의 말이 소설의 사전적 정의와 문학적 의미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온 셈이다. 소설의 정의는 오랜 기간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기 때문에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16세기 영국에선 소설(novel)이라는 말 자체가 창작된 글이라는 의미로만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보바리 부인’을 쓴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묘사는 완전해야 하며, 사물의 표면과 이면을 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의 소설가들이 정치인들에게 ‘소설이 뭔지나 알고 떠들라’는 비난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회에서의 발언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몇몇 금지 단어를 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추 장관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이야기를 가려내려 애쓰는 소설가들의 예민한 촉수를 건드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소설가들의 잔뜩 날이 선 성명에는 소설의 의미는커녕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라도 한 번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

추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 같다. 추 장관의 사과는 협회 성명이 나온 지 47일이나 지나서야 나왔다. 추 장관 아들의 특혜휴가 의혹이 한참 퍼지던 때였다. 추 장관은 “사실은 독백이었는데 스피커가 켜져 있다 보니까 그렇게 나가 버린 것 같다. 상당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소설가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글만 묵묵히 쓰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홀대받는 측면이 있는데, 그것 역시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하면 됩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이 교단 위에서 ‘소설 쓰시네’ 같은 말을 할 수 없듯 국민이 다 볼 수 있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 나온 국무위원이 사석에서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말을 해선 안 됩니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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