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테스형

국민일보

[한마당] 테스형

천지우 논설위원

입력 2020-10-05 04:05

이번 추석 연휴에 뜬금없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회자됐다. 연휴 첫날 방영된 나훈아의 KBS 콘서트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특히 그의 신곡 ‘테스형’은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이어서 신선한 재미를 줬다. 같은 날 유튜브 방송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 군주라고 한 것을 (문제 삼아) 떠드는 분들은 2500년 전 아테네에서 태어났으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유 이사장 본인을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으나 어리석고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처형됐던 소크라테스에 비유한 셈이다.

나훈아의 ‘테스형’을 두고 한 대학교수는 형이란 호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호명되는 사상가를 사적인 존재로 전이시켜버림으로써 그의 사상적 유산이 지닌 보편적 함의를 외면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재미난 유행가 가사에 지나치게 엄숙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느껴진다. 다만 사상가의 이름이 회자된 김에 그가 남긴 유산을 곱씹어 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나훈아는 노래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말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고 푸념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던 말인데 소크라테스가 인용하면서 그의 명언으로 굳어졌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먼저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니 나훈아가 그 말을 모르겠다고 한 건 자연스럽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니며 온갖 직종의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일이나 의견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이런 대화를 통해 나름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난 그들 모두가 정신적, 도덕적 행복보다 실용적 이점을 앞세우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비이성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죽임을 당했지만 사형 직후 여론이 다시 바뀌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던 자들도 벌을 받았다.

천지우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