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민주주의가 위기 신호를 보낸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민주주의가 위기 신호를 보낸다

입력 2020-10-06 04:01

민주주의 수호에 핵심 기능인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없어지면
정치 권력의 특권이 합법적인 극단 전술로 거칠게 경쟁자를 제거하려 들어
입만 번지르르한 저질 의원,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고 포퓰리즘만 판치는 정치 기술
‘너희가 그러니 우리도…’ 시작부터 악순환 21대 국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정치학자 두 명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 박세연 옮김)라는 책을 썼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두 교수는 민주주의 수호의 핵심 기능으로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 두 규범을 꼽았다.

두 저자는 상호 관용의 개념을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경쟁을 하며, 사회를 통치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상대 주장을 혐오할 수 있으나 정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말한다. 제도적 자제는 제도적으로 용인된 권리 또는 법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말고 자제하라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제도적 특권을 활용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민주주의에서 둘 다 아주 중요한 덕목이지만 제도적 자제는 특히 새겨야 할 규범이다.

영국 왕은 공식적으로 총리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 이건 왕의 권리다. 지금도 영국엔 총리 임명과 관련된 성문법이 없다. 그러나 총리는 실질적으로 선거를 통해 하원 다수당의 대표가 맡는다. 영국 왕들은 수 세기 동안 이 관습을 자발적으로 따랐다. 제도적 자제는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

제도적 자제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나. 정치 권력이 특권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된다. 일정한 규칙은 있지만 그 범위 안에서 거칠게, 전투적으로 상대방에게 권력을 휘두른다. 법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영원히 지지 않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도 극단적 전술로 대응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나쁜 선례는 계속 쌓이고 악순환에 걸려든다. 민주주의 위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21대 국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위기 신호를 보냈다. 이른바 위성정당. 듣보잡 정당이 생긴 것은 진보든 보수든 제도적 자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정치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게 목표이므로 자제 규범이 작동하지 않았다. 정치는 없어지고 극단 전술과 혐오 발언만 난무한다. 자격 미달이나 파렴치 행위 국회의원들이 들어선 건 당연한 결과다.

추미애 법무장관·아들과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이라는 사냥개를 틀어쥔 권력이 거칠게 특권을 휘두른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차관에 임명한 김학의의 범죄를 정치 권력의 하청업자 검찰 권력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으로 뭉개버렸다. 정권이 바뀌고 발생한 추 장관 아들 휴가 문제도 똑같다. 혐의 수준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사건을 오랜 기간 묵히고 무혐의로 가기 위해 따박따박 조치한 본질은 같다. 이 사건도 훗날 특검이 달려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서해에서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사살된 이후, 진보·보수세력이나 국방부의 대응 과정에선 손톱만치도 자제 규범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이 먼저’라던 정권이 한 공무원의 생명을 이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정권은 사건을 숨기다가 특수첩보(SI)와 개인의 은밀한 정보까지 까발리면서 월북과 빚쟁이로 몰아갔다. 야당도 감청 내용과 음어·약어를 그대로 공개해 정쟁에 활용했다. 국회의원들은 군과 정보기관의 비공개 보고 내용을 아이들이 자랑하듯 여기저기서 떠들며 아는 체했다. 국방부는 정치 권력에 맞춤용 정보를 제공, 정보 보호에 실패함으로써 ‘저런 군을 믿어야 하나’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모두 매국행위에 가깝다.

합법적으로 극단적인 전술을 악용하고,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사라진 결과는 ‘너희가 그렇게 했으니 우리도 이렇게 한다’이다. 명백히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다. “민주주의는 정부·여당이 패배할 수 있는 제도”(애덤 쉐보르스키 뉴욕대 정치학 교수)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버릴 유혹에 빠지게 된다.

21대 국회가 동물국회, 식물국회를 지나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는 최악의 국회로 가고 있다. 진보나 보수나 곳곳의 입만 번지르르한 저질 국회의원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 가짜뉴스나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 기술,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상대를 제거하려는 거친 전략…. 다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 아닌가.

김명호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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