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공수처 딜레마 풀려면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공수처 딜레마 풀려면

입력 2020-10-07 04:01

법 시행일 한참 지났는데도 야당이
처장후보추천위 구성 협조하지 않아 출범 못해
여권, 야당 비토권 무력화할 법 개정 무리수
두지 말고 중립성 보장으로 해법 찾아야
처장에 코드 인사 임명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출범 동력 살릴 수 있을 것

이번 정기국회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건이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게 지난 1월 14일이고 시행일(7월 15일)이 지난 지 오래인데도 공수처는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장을 임명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이 처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서다.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하고 있는데, 첫 관문에서 막힌 것이다. 후보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당연직 3명에 여당과 교섭단체 야당이 추천한 각각 2명으로 구성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추천위원을 선임했지만 유일한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은 선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신인 미래통합당 때인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 공수처법이 위헌인지를 가려 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여왔다.

여권은 이번 정기국회에 공수처 출범을 매듭짓겠다며 야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조속한 출범을 당부한 데 이어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5일 “처리를 늦출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온다”며 설치를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국민의힘이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면 의사일정으로 합의된 10월 26일까지 반드시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법사위 소위에는 정당 몫의 추천위원 4명을 여야 교섭단체가 아니라 국회가 추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김용민 등 민주당 의원 12명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다. 국민의힘이 추천위원 선정을 계속 미루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겠다는 압박이다.

제1야당이 배제된 가운데 공수처가 출범하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추천위 구성에 협조해야 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법이 제정됐는데도 시행을 막는 것은 몽니일 뿐이다. 추천위가 구성되더라도 야당에는 처장 비토권이 있다. 처장 후보는 추천위원 7명 가운데 6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추천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선정할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는 인물은 처장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추천위원 선정을 거부하는 것은 공수처 출범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키우게 될 것이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하고 판검사와 고위경찰관은 기소까지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수사기관이다.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줄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선택적 수사와 기소로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들어 온 검찰을 견제할 수 있어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공수처법 국회 통과를 전후해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설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던 이유다. 국민의힘이 공수처를 저지하려는 것은 이런 여망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권이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여권은 조속한 출범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조금 늦더라도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내용을 제대로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 야권을 최대한 설득하고,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 주는 게 그 첫걸음이다. 여권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앉히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공수처와 검찰이 불편부당한 수사기관이 되기를 바라는 여론에 귀를 열어야 한다. 후보추천위원 선정 방식 변경, 추천위 의결 정족수 하향,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 완화 등 새로운 논란과 갈등을 부를 개정안 처리를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부정부패 수사 의지와 능력이 있고,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강단이 있고, 야권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을 추천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그래야 민심을 얻을 수 있고 출범 동력을 살릴 수 있다. 민주당은 장기집권의 꿈에 부풀어 있을지 모르지만 민심은 바뀌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야당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중립성이 보장되는 그런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설령 정권을 내주더라도 제 발등 찍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겠나.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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