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가을 모기의 경고

국민일보

[돋을새김] 가을 모기의 경고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입력 2020-10-13 04:08

잠결에 소리를 들었다. 잠의 바다에 깊게 빠져 있던 뇌가 수면으로 떠오르기까지 시차를 이기고 나니 둘째 아이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아빠, 방에 모기가 있어요.” 따닥이라 부르는 전기모기채를 들고 작은방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살피다 벽에 걸린 가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녀석을 발견했다. 잔뜩 피를 먹어서인지 배가 불룩했다. “따다다닥.” 시계를 보니 새벽 4시10분. 집안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인데 아직도 모기가 출몰하다니. 시월이 되면 나아질까 했는데, 여전히 모기들은 맹위를 떨친다. 올해 유난히 극성인 가을 모기는 긴 장마와 태풍으로 여름에 번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걸로 다 설명이 될까.

모기는 더듬이에 달린 감지기로 탐지해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젖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소정맥이나 소동맥에 흠집을 내고 90초 동안 자기 몸무게의 2, 3배에 이르는 피를 빨아먹는다. ‘파티’를 마치면 무거워진 몸으로 필사의 탈출에 나선다. 안전하다 싶은 벽이나 나무 등에 앉아 휴식하면서, 먹은 피에서 수분을 뽑아내 오줌 형태로 배설하고 고농축 영양분을 저장한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이 약 45분이다. 이걸 끝내면 암컷 모기는 알을 낳으러 웅덩이를 찾아 날아간다.

역설적으로 모기는 인간 덕분에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은 원주민의 땅을 빼앗으며 정착지를 건설했다. 농장, 광산에서 원주민을 착취하던 그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고 17세기 초부터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신대륙에 닿은 배에는 노예 외에 모기, 그리고 모기가 품고 있는 말라리아, 황열병이라는 불청객이 타고 있었다.

모기는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경고해 왔다. 숲을 베어내고, 산을 깎고, 강의 물줄기를 막으면서 모기는 더 가까이 인간 곁으로 다가왔다. 집모기들은 인간이 만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철을 잊고 있다. 지하실 웅덩이, 다락 등에서 겨울을 나고 집 안이나 집 주위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인간의 피를 빤다. 비행기, 선박, 기차, 트럭 등 인간의 이동수단을 이용해 새로운 땅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아시아에 주로 서식하던 호랑이모기(흰줄숲모기)는 미국 남부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가을 모기의 왕성한 출현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고 캘리포니아, 호주,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것에 비하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대기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파울 요제프 크뤼천은 2002년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지구가 현재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균형추가 무너지면서 대기, 해양, 토양에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가해지는 게 인류세의 특징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자연은 인간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19 대확산도 ‘자연의 반격’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는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고 친환경 경제·산업체계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내놓은 2400조원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투자 공약,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앞다퉈 조성하고 있는 기후혁신펀드는 이런 연장선에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는 인류 멸종을 막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저성장으로 접어든 세계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길이기도 하다.

기후 재앙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가을 모기쯤이야 할 수 있다. 다만 가을 모기와 기후 재앙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그래서 가을 모기가 던진 경고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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