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표정과 손짓의 언어, 수어의 예술성에 주목하자

국민일보

[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표정과 손짓의 언어, 수어의 예술성에 주목하자

입력 2020-10-17 04:07
2016년 토니상 무대에 오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중 한 장면. 이 작품은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한 뒤 2015년 이뤄진 리바이벌 공연에서 특별한 연출을 가미했다. 청각장애인 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수어로 연기한 것이다. AP뉴시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한 그 시즌 최고의 작품이었다.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 원작으로 사춘기 십대 소년소녀들이 어른들의 세계속에서 지치고 병들어가는 모습을 얼터너티브 록음악과 과감한 퍼포먼스로 표현한 문제작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새로운 연출가에 의해 재해석되는 리바이벌 공연은 보통 초연이 이루어지고 최소 10년의 주기인데, 이 작품은 2015년 리바이벌 공연이 이루어졌다. 대체 얼마나 특별한 재해석을 했기에?

과연 달랐다. 새 프로덕션은 캘리포니아 노스 할리우드에 본거지를 둔 데프 웨스트 극단(Deaf West Theatre)은 청각장애인(농인) 배우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이 캐릭터를 맡고 비장애인(청인) 배우들이 이들과 함께 같은 캐릭터를 2인1역의 방식으로 맡아 연기했다. 농인 배우는 수어로 연기하면서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청인 배우를 일종의 분신으로 설정해 그의 입을 빌어 노래하고 대사를 전달한다.

원작 소설의 주제는 19세기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억압적인 교육 시스템과 기성 세대와의 소통의 부재이다. 이러한 주제는 농인들에게 수화법 대신에 구화법(口話法, 입술을 읽는 방식) 습득을 강제했던 그 시대의 잘못된 역사를 떠올리게 하며 ‘소통’의 주제를 한층 더 강화시켰다.

수어는 얼굴 표정과 손동작으로만 그 의미를 신속하게 전달해야 하기에 전략적 모호함을 수시로 추구하는 음성 언어에 비해 직관적이고 단호하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할 때 팩트 전달에 최우선적으로 치중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소통해야 한다면 평소보다 표정과 손짓발짓 모두 현란해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 무대 연출가들 중에는 이러한 수어가 태생적으로 가진 특별한 퍼포먼스를 주목하면서 이를 통해 장애예술을 초월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으려고 노력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어의 예술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으로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2015)를 제작한 이길보라 감독의 아버지는 수어가 가지는 적극적인 얼굴 표정과 손동작으로 인한 표현의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음성 언어가 내용을 전달하기는 쉽지만 수어가 전달하는 적극적인 소통 방식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과 시도가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수어 예술콘텐츠 창작집단 핸드스피크는 농인과 청인이 같이 무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연기하는 작품 ‘사라지는 사람들’을 지난해 공연했다. 청인 배우의 도움이 없으면 농인 배우의 내용 전달이 어려운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방식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각각 농인 배우는 수어로 청인 배우는 대사로 연기하며 서로 상대역이 된다. 그들은 배우이자 동시에 상대방의 통역자가 되어 드라마를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방식은 농인 배우들의 비중과 적극성을 보다 높이게 된다. 핸드스피크의 창단 멤버로서 수어래퍼이기도 한 김지연 연출가가 올해 발표한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 수어 버전 뮤직비디오도 흥미롭다. 기존의 뮤지컬 음원을 오디오로 사용하면서도 수어가 주는 비주얼로 인해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움직임들이 서서히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수어가 주는 공연성에 대한 가치가 점차 상승할 것이다.

TV에서 수어통역사가 화면 한쪽에서 수어를 하는 광경은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음성만으로 뜻을 전달하면서 표정을 숨기기 쉬운 세상속에서 수어는 거짓말을 잘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진실을 직관적으로 신속하게 전달하는거 이외에 에너지를 쉬이 낭비하지 않는 수어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커지리라.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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