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코로나 추석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제주도 코로나 추석

박두호 (전 언론인)

입력 2020-10-17 04:01

추석이 지나고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 하도어촌체험마을에 갔다. 관광객들은 해녀 체험 활동을 하지만 동네 낚시꾼들은 궁금하면 모이는 곳이다. 체험장 교장 선생이 나를 보고 한 첫마디가 “올해는 코로나 덕분에 추석을 편하게 보냈어”라고 했다. 괸당(친척)네 가서 함께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른 괸당들이 멩질(명절) 먹으러 자기 집에 오지도 못했다.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찾아오는 괸당에게 상을 차려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다. 평소 멩질 먹으러 괸당네 예닐곱 집은 다녔다는 한 사람은 작은 집에 제사 지내러 갔을 뿐 다른 괸당네 방문은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집콕’했다고 했다. 제주시 사는 내 조카는 추석 때마다 과일, 고기 사 들고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 마을 열 집은 돌았다. 올해 두 집만 다녀왔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제주 사람 모두 이런 경험을 타의에 의해 처음 했다.

제사는 사람이 죽은 날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와 명절에 4대조까지 모시는 제사로 구분된다. 자손이 잘되게 해 달라는 목적이다. 추석은 차례라고도 하지만 차만 올리는 것은 아니고 가장 큰 제사상이 준비된다. 추석이란 1년 동안 치러지는 많은 제사 가운데 가장 큰 제사라는 말의 다름 아니다. 조상 묘를 오름 꼭대기까지 찾아다니며 벌초하고 돼지를 잡아 음식을 마련해 이 집, 저 집 괸당네 다니며 함께 먹고 마셨다. 가족 간 결속을 다지고 내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는 효도의 대물림이다. 올해는 마을 현수막 ‘마음은 가까이 몸은 멀리’라는 슬로건처럼 방콕하며 보냈으니 말은 편했다 하나 내심 불편했던 것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제주도 제사문화는 유별나다. 봉사하는 기제사가 집집마다 3대 또는 4대 조부모까지 기본 6회에서 15회(부인이 2명 이상이거나 자손이 없는 친척의 제사를 포함)에 이르고 그때마다 없는 돈에 돼지 잡아 상 차리고 괸당들은 보리쌀, 고기, 빵을 부조하며 제사 먹으러 찾아다녀 가문의 세를 과시한다. 제사에 참석함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누리는 혜택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상중의 초하루 보름 삭망에 신위에 음식을 올렸는데 곧 죽어도 삭망에는 곤밥(쌀밥)을 차렸고 이때 아이들이 담뱃불을 붙여 올리다 담배를 일찍 피우게 됐다. 제주도 여자들은 조상 모시다 평생 간다고 하는 말이 맞는다.

우리 마을 하도리에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40대 가족이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다. 육지 출신 신식 며느리와 살게 된 시부모는 당신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 11회의 기제사를 합제하거나 고조부모 제사를 차례로 대신하기로 해 4회로 줄였다. 자신들이 죽으면 큰아들이,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둘째, 셋째에게 각각 제사하도록 나눴다.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고생을 물리지 않기 위해 제사를 줄였다. 사회적 관습은 어떤 계기에 변화한다. 유별나다는 제주도 제사문화가 코로나19로 멩질 길이 끊긴 체험을 한 번 해본 계기로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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