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주민 보호구간’ 설치했을 뿐인데… 사망 교통사고가 사라졌다

국민일보

‘마을주민 보호구간’ 설치했을 뿐인데… 사망 교통사고가 사라졌다

[커버스토리] 교통안전 모범지역된 경남 고성·전남 무안군

입력 2020-10-17 04:01
<자료: 국토교통부>

경남 고성군에서는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총 14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역 경찰서와 한국교통연구원이 해당 기간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 사례를 분석해보니 사고가 난 지점들은 크게 회화면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인근과 고성읍 부포사거리 인근, 율대사거리 인근, 동해면 덕곡경로당 인근 네 군데로 압축됐다.

사고가 가장 자주 난 곳은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인근으로 3년 사이 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유형도 보행자 사고, 차량 간 충돌, 차량의 단독 충돌 등 다양했는데 이곳에서 일어난 5건의 인명피해 모두 운전자의 과속과 안전거리 미확보 등이 사고 원인으로 분석됐다. 터미널 앞 4차로 도로에는 시속 70㎞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도 설치돼 있지만 운전자의 과속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에서만 50대 남성과 70대 여성 등 2명이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숨졌다.

같은 기간 4명이 숨진 부포사거리 인근 도로 역시 시속 70㎞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곳에서도 차를 몰던 20대 남성과 60대 남성이 각각 차량 충돌, 전복 사고로 숨졌다. 속도제한 규제가 있어도 교통사고가 계속 난 셈이다.

그랬던 고성군이 달라졌다. 고성군에서 지난해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는 ‘제로’다. 2015~2017년 교통사고 사망자가 9명 나온 전남 무안군 역시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교통사고 사망자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지난해부터 ‘마을주민 보호구간’이 설치됐다는 점이다. 마을주민 보호구간이란 주로 도시 외곽이나 시골의 마을 주변 국도에서 자주 발생하는 보행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처럼 도로에 별도의 구간을 설정해 안내표지판과 과속 단속 등을 하는 구간을 의미한다. 도시에서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도로에 보행자가 자주 없다 보니 운전자들이 차를 쌩쌩 모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로 인한 보행자 교통사고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16일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전국의 국도에서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는 1641건이었지만 2016년 1690건, 2017년 1897건, 2018년 1959건, 지난해 2142건으로 계속 증가해 왔다.

차량 간 충돌을 비롯한 국도에서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에서 보행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증가하고 있다. 2015년 전체 사고에서 보행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9.7%였으나 지난해에는 10.6%로 뛰었다.


정부는 보행자 교통사고 방지 차원에서 전국 국도에 마을주민 보호구간을 설치하는 사업을 2015년부터 추진해 왔다. 첫해에는 시범적으로 전국 14곳 12.25㎞ 구간에만 설치하고 해마다 점차 확대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 2018년 국토교통부는 고성군을 비롯해 전국 10개 시·군 30개 구간(43.38㎞)에 마을주민 보호구간을 설치했다. 이때 시범사업을 한 30개 구간에서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188건에서 115건으로 39% 줄었다. 특히 교통사고 사망자는 17명에서 1명으로 94%나 줄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은 16일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도 제한”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마을 주변 국도에서 사고가 자주 나는 구간을 보면 논밭 바로 옆 도로인데, 보도가 따로 없거나 집의 대문을 열면 바로 도로가 나오는 등 구조적으로 교통안전에 취약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여건을 개선하는 작업과 함께 운전자가 보행자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곳에서 과속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

마을주민 보호구간은 마을 인접 도로 가운데 최근 3년간 교통사고가 1㎞ 이내에서 8건 이상 일어나거나 사망사고가 3건 이상 발생한 구간에 지정된다. 마을이 시작되는 지점의 전방 100m부터 마을이 끝나는 지점 후방 100m까지 지정이 되며,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 ‘마을주민 보호구간’이란 글자와 제한 속도가 적힌 표지판이 각각 설치된다. 또 무인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노면에 미끄럼 방지 포장, 지그재그선, 중앙섬(횡단보도 중간 부분에 보행자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보도, 회전교차로 등의 시설 개량을 하기도 한다. 다만 지역 교통 특성이나 보행 환경, 지자체 예산 규모 등을 고려해 각각 다르게 적용한다.

도로교통법상 근거가 없다 보니 어린이보호구역과 같은 수준의 시속 30㎞ 이내 주행 규정을 두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마을주민 보호구간에서 교통사고 감소 효과를 낸 것은 ‘과속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운전자에게 심어준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 센터장은 “그동안 국도라 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주로 이동성에만 맞춰져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국도에서 과속하는 데 대한 경각심이 적었고, 다른 나라보다 국도에서 마을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 구간을 만든다는 것을 늦게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마을주민 보호구간’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캐나다의 한 도로 표지판에 ‘커뮤니티 세이프티 존(Community Safety Zone)’이라는 문구와 함께 ‘벌금(과태료)이 늘어난다’고 적혀 있다. 가운데는 영국의 주택가 주변 한 도로. 노면에 ‘홈 존(Home Zone·주택가)’이라고 표시돼 있다. 오른쪽은 차량 통행을 우선했던 도로 공간을 대폭 축소해 보행자와 자전거, 어린이 등을 위해 바꾼 홈 존의 모습. 국토교통부 제공

실제 서구 주요국에서는 우리보다 빨리 마을 주변 도로에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운용해 왔다. 캐나다는 ‘커뮤니티 세이프티 존(Community Safety Zone)’이라는 제도를 1998년부터 시행해 왔다. 학교나 요양시설, 놀이터, 공원, 병원, 노인 주거지 등 지역 내 교통사고 위험이 큰 구간에 지자체가 지정해 속도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 사고를 내면 벌금이 가산된다는 경고 문구도 표지판에 같이 붙는다. 영국도 2002년부터 ‘홈 존(Home Zone)’이라는 명칭의 유사한 제도를 시행해 왔다.

현재까지 마을주민 보호구간은 전국 89개 시·군, 246개 구간(357㎞)에 설치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 구간을 더 확장하기 위해 지자체 공모 등을 거쳐 올 연말까지 2021~2023년 사업 대상지 선정 계획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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