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부흥운동 목격 커닝햄, 환원운동 주춧돌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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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부흥운동 목격 커닝햄, 환원운동 주춧돌 놓아

이강평 총장 환원운동을 말한다 <9> 한국 그리스도의교회 역사

입력 2020-10-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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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독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생들이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캠퍼스에서 이강평 총장(가운데)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교회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로 시작됐다. 성령의 임재는 교회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미국의 환원운동은 제2차 대각성을 토대로 출발했다. 바톤 스톤에 의해 주도된 케인 릿지의 성만찬 천막집회는 환원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한국의 환원운동은 1907년 시작됐다. 그해 일본 요추야선교회의 윌리엄 커닝햄 선교사는 ‘중국 개신교 선교 100주년 기념 선교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가는 길에 한국을 경유한다. 커닝햄은 한국에서 평양 대부흥운동을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커닝햄은 23년 한국인을 위한 선교를 도쿄에서 시작했으며, 26년 한국인을 위한 최초의 그리스도의교회를 설립했다. 최초의 한국인 그리스도의교회가 서울이 아닌 도쿄에서 시작된 것은 흥미롭다.

커닝햄은 24년 서울선교기지(포교소)를 시작했고, 30년 서울 제1교회가 설립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커닝햄은 36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도쿄에 한국인 교회 3개, 국내 12개 교회를 후원하며 한국 그리스도의교회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서는 성경을 통한 자각으로 시작된 환원운동도 있었다. 원래 구세군 사관이었던 성낙소 목사는 19년 충북 영동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성 목사는 성경 연구를 하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교회에 대한 자각을 얻었다.

그는 구세군 사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충남 부여로 돌아가 교회를 개척했다. 성경의 이름을 따라 교회 이름을 정했는데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였다. 즉 그리스도의교회였다.

성 목사는 일본에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의 커닝햄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는 커닝햄을 통해 환원운동과 그리스도의교회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는 일본 내 한국인 그리스도의교회에서 목회하다가 31년 커닝햄의 요추야선교회의 조선지역 포교관리자 신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32년 6월 11일 성 목사는 조선총독부에 ‘동경사곡선교회 기독교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했다. 그리스도의교회가 역사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교회 선교를 위해 입국한 선교사는 마이클 쉘리다. 그는 35년 3월 입국했지만, 건강의 이유로 7개월여 만에 돌아가며 후임으로 존 채이스 선교사를 추천했다.

채이스 선교사는 일본 요추야선교회의 사역을 마치고 36년에 입국해 서울 송월동에 건물을 빌려 ‘기독교회 선교부’를 설립했다. 격월간지 ‘한국인 전령’을 발간했으며, 한국성서훈련원을 설립했다.

한국성서훈련원은 이후 그리스도의교회 사역자들의 산실이 됐다. 이 훈련원의 최초 학생은 김요한 목사다. 그는 미국 에머리대학교를 졸업한 감리교 목사로 채이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고용된 교사였다. 그는 37년 3월 신당정 그리스도의교회를 개척하고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최상현 김문화 백낙중 박판조 성낙소 목사 등이 이 훈련원에서 공부한 뒤 그리스도의교회의 목사가 돼 교회를 개척했다. 채이스 선교사는 그리스도의교회가 한국에 자리 잡는 데 확고한 기초를 놓았다.

또 하나의 환원운동은 미국에서 직접 그리스도의교회를 접한 경우다. 동석기 목사는 함경북도 북청 출신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와 게렛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감리교 목사가 돼 13년 귀국했다.

그는 27년 다시 도미하는데, 이때 미국 그리스도의교회를 접한다. 그리스도의교회 신학대학원인 신시내티 성서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환원운동을 배우고 ‘미국 환원운동의 초기 역사’라는 논문으로 졸업했다.

30년 11월 다시 귀국한 그는 고향 북청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그리스도의교회를 개척했다. 39년 미국을 방문한 후에 서울 내수동 그리스도의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환원운동을 설파했으며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주력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많은 그리스도의교회를 격려하고 후원했다.

그리스도의교회의 한국선교는 다른 교단에 비교해 한 세대 늦게 시작됐다. 선교사가 입국했을 때는 이미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은 후였다. 사도 바울이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고 고백하듯이 그리스도의교회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오지와 낙도로 향했다.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의교회는 전국적으로 500여개의 2만여 교인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펼치고 있다. 교단 소속으로 서울기독대와 KC대가 있으며, 부산 동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 등도 환원정신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다. 서울자동차고등학교와 등촌중학교 등도 환원운동에 속한 교육기관이다. 그리스도의교회에 속한 주요 인물로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장성만 목사, 맨발의 성자로 잘 알려진 최춘선 목사, 서울기독대 명예총장 최윤권 목사 등이 있다.

이강평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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