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음의 시선이 닿는 곳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마음의 시선이 닿는 곳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10-16 04:07

다음 일정까지 기다릴 곳이 필요해 근방에 새로 생겼다는 야외 카페에 갔다. 잘 관리돼 아름답고 편안한 새 공간. 맛있어 보이는 진열대 메뉴들이 그간 지쳐 있던 마음까지 붕 뜨게 했다. 그런데 주문한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테이블에 있던 아이가 날벌레에 놀라 손을 휘젓다 그만 내 음료수를 쏟았다. 순식간에 테이블과 바닥은 물론 들고 갔던 책마저 엉망이 됐다.

아이의 실수니 괜찮다고 인사하며 자리를 수습했지만 짧아서 더 소중했던 내 자투리 휴식이 날아간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아마도 붕 뜬 기분에 취했던 터라 상황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으리라. 그러고 보니 달콤한 음료수들 때문인지 주변에 날벌레가 꽤나 많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편하게 앉아 있기엔 벌레가 신경쓰일 듯해서 야외 풍경을 포기하고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은은한 음악이 깔린 실내도 나쁘지 않았지만 어쩐지 시무룩해져 가라앉은 기분처럼 바닥만 남은 음료를 휘휘 젓다가 깨달았다. 왜인지 실내가 야외만큼이나 환하다는 사실을. 빛의 정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보니 높은 천장 한쪽에 뚫린 큰 창문으로 멋진 가을 하늘이 가득히 보였다. 날벌레의 습격이 아니었더라면 이 공간의 숨은 매력 하나를 놓칠 뻔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콘크리트 천장 사이로 쏟아지는 파란 하늘과 새하얗고 몽실한 구름을 보며 남은 음료수를 아껴 마시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뇌과학 관련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실제가 아닌 쾌적한 풍경 이미지만으로도 사람의 기분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심지어 우울감까지 완화시켜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버거운 상황일수록 어렵더라도 시선을 약간만 바꿔보면 어떨까. 시간의 흐름 따라 바뀌는 자연의 한순간, 나뭇잎에 스쳐가는 바람 소리들…. 이렇게 시선을 바꾸면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순간이나마 어디에나 있으니 말이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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