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벌써 그리운 ‘94세 낭만닥터’

국민일보

[여의춘추] 벌써 그리운 ‘94세 낭만닥터’

한승주 논설위원

입력 2020-10-16 04:01

94세, 휑한 머리숱은 검은 모자로 가렸다. 흰 가운에 청진기를 목에 건 그는 아침이면 가장 먼저 병원에 나와 환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늘 미소 띤 얼굴로 찬송가를 불렀다. 창밖으로 보이는 꽃이 아름다워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기뻐서 감사 기도를 올렸다. 경기도 남양주시 매그너스요양병원 한원주 내과 과장 얘기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였다. 그는 이곳에 12년 동안 머물며 70대 이상 중증 치매 환자들을 치료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은 사람들을 동생처럼 친구처럼 돌봤다. 환자들과 같이 입원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에 그는 매일 회진하고 처방하고 직접 컴퓨터에 환자 상태를 입력했다. 오른손이 떨려 말을 듣지 않으면 왼손이 이를 도왔다. 이 병원의 모든 이들이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남겨진 이들은 그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그의 삶은 생전에도 방송 다큐멘터리와 신문 인터뷰 등을 통해 알려졌다. 한원주는 1926년 일제강점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는 딸에게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하라고 했다. 그는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뒤 귀국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한 사람이 많지 않아 개원 후 환자가 밀려들었다. 부와 명예를 얻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하나님을 영접한 후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다. 50대 초반이었다. 돈을 버는 도구였던 의술은 사람의 영혼까지 치유하는 도구가 됐다. 개인병원을 정리하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돌봤다.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뿐 아니라 생활비, 장학금까지 지원했다.

매그너스요양병원은 82세에 그가 마지막 근무지로 선택한 곳이다. 1주일 중 5일을 환자를 돌보고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면 이곳에 입원해 죽을 때까지 있겠다는 것이 그의 계약조건이었다. 병원 월급과 외부에서 받은 상금은 대부분 기부하고 주말에는 틈틈이 자원봉사를 다녔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기도의 응답이 무료 진료였다. 그러다 보니 구십이 넘었다”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등은 그가 자주 했던 말이다.

한원주의 삶을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새삼 생각해본다. 지난봄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정체불명의 감염병이 확산됐을 때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아직 잊지 못한다. 땀으로 흠뻑 젖은 방호복, 마스크에 짓눌린 피부에 붙인 반창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에 고개가 숙여지던 시간이었다. 여름을 지나며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 찬반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국민 여론은 좋지 않았다. 엘리트 기득권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의대생의 국가시험 거부와 이를 재고해 달라는 의료계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공정의 문제를 건드렸다.

의사는 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본인의 노력이 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출발부터 유리한 환경에 있었을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경제적 환경과 교육에 관심을 가져준 부모, 어릴 적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 등이 다른 이들보다는 많았을지 모른다. 의대생의 상당수가 고소득층 자녀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의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사람을 살리고 병을 고칠 수 있는 실력만은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이라는 성적만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운 좋게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인성,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걱정하고 도와주는 배려심도 중요하다.

40여년을 사랑으로 베푸는 삶을 살았던 의사 한원주는 행복했다. 그는 세상에 자신이 베푼 것보다 훨씬 큰 행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세 단어였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어느새 완연한 가을이다. 이 계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94세 낭만닥터가 마지막 남긴 세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