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우문우답, 자유를 짓누르다

국민일보

[국민논단] 우문우답, 자유를 짓누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20-10-19 04:02

코로나 시대의 도덕률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 명은 100명 이상의 축제에, 다른 한 명은 100명 이상의 시위에 참가했다. 누가 더 부도덕할까? 다음 날, 한쪽은 100명 이상 ‘대규모 콘서트’에, 다른 한쪽은 100명 이상 ‘대규모 집회’에 참가했다. 누가 더 지탄받아야 할까? 비말을 더 많이 뿜은 사람은? 답이 쉽지 않다. 제레미 벤담을 소환하건, ‘테스형’을 소환하건 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왜?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이 우문(愚問)에 용감하게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직에 몸담은 분들이다. 지자체 공무원이 답을 만들면, 경찰이 덥석 문다. 이분들의 답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집회와 시위에 참가한 자! 이 엉터리 답안에 따라 한쪽은 선량한 시민이, 다른 한쪽은 불법 가담자가 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12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조정됐지만, 100명 이상의 집회·시위는 여전히 무조건 불법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애초에 질병관리청은 국민을 둘로 나누지 않았다. 100명 이상의 모임은 자제를 권했지만 결국 허용했다. 마스크 착용, 명단 관리, 거리두기만 잘 지키면 자유 시민으로 집단과 혼연일체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나의 삶을 만들고 우리의 삶을 함께 만드는 순간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 차벽 없는 광장을 마주하며 작은 군중 속에 몸을 실은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반갑고 감사했다. 노동, 종교, 정치 등에서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달랐지만 이념을 초월한 시민들은 간격을 유지하고 체온을 쟀다. 개천절과 한글날에 차벽과 집회금지 고시만 없었다면 광장 안에서 벌어졌을 풍경이다.

서울시발(發) 집회금지 고시의 시작은 지난 2월이다. 코로나가 도심을 집어삼키자 고 박원순 시장은 주요 장소의 집회금지를 명했다. ‘감염병 확산을 막고 시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과 함께. 집회는 시민건강의 적이요, 몰염치한 집합으로 호명됐다. 중앙, 지방, 시군구 너도나도 집회금지의 깃발을 들었다. 금지 구역이 늘고 공간은 비워졌다. 상인들이, 철거민들이, 청소노동자들이, 또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하나둘 쫓겨나 고립됐다. 민주시민의 기본 권리도 덩달아 유폐됐다.

지자체와 경찰의 우문우답을 부추긴 건 정부다. 국가 지도자들이다. 이른바 ‘과할 정도로 강력히’가 만능의 구호가 돼 합리적인 눈과 귀를 죄다 틀어막았다. 여기에 맞춤형 행정도, 인권 방역도, 국제 규범도 모두 허수아비가 됐다. 추풍낙엽 지지도 하락은 되레 더 강한 자기 확신을 만들었다. 분통 터트릴 대상이 필요했고, 낙인찍기가 요술봉이 됐다. 외국인이건, 성소수자건, ‘이단종교’건, ‘정치교회’건 닥치는 대로 낙인찍었다. 확진자는 납작 엎드리고 입 닫는 게 최선인 법. 바이러스 취급당하는 사람이 늘수록 한쪽에선 불안이, 다른 쪽에선 불신이 커졌다. 냉혹한 각자도생의 사회가 펼쳐졌다.

다행인 건 양심 세력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거다. 각자도생을 거스르려는 움직임이다. 팬데믹이 아무리 흉포해도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소거할 순 없단 거다. 행정명령이 법률을 대신할 수 없으며, 100명 축제는 되고 100명 시위는 안 되는 엉터리 기준을 철회하란 요구다. 힘들어 지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길 위에 서도록 허용하란 준엄한 요구다.

정부 내 양심세력들도 동참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해 기본권 침해와 맞서 싸워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는 필수다. 집회와 시위할 권리가 위축된다면 차별과 혐오는 암세포처럼 커질 것이다. 온라인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한 만큼 오프라인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가짜뉴스 즉시 삭제는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 선언했던 인권위의 당연하고도 용감한 결단이 다시 필요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질병관리청은 눈과 귀를 더 열기 바란다. K방역을 반쪽 방역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지자체와 경찰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관장하는 다양한 주체와 기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기본권 앞에 우문우답하는 세력이 있거든 엄히 꾸짖고, 바른길로 인도하라. 그렇게 이제 방역과 인권을 조화시킬 방안을 마련해 달라.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기약이 없지만, 자유와 연대가 살아 있는 세상은 우리의 반경 안에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