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지조론이 쓰인 까닭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지조론이 쓰인 까닭

입력 2020-10-21 04:01
시대 상황에 따라 명분 없이 정치적 경제적 이익 좇아
이편저편 넘나들고 기웃거리는 정치인, 지식인 숱하게 많아
역할 끝나도 퇴장 모르는 정치인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에 의한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은 기존 정치구도를 뿌리째 바꿔버렸다.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단박에 비호남 대 호남의 지역대결 구도로 고착화시켰다. 야도라 불렸던 부산, 대구가 보수의 아성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투표 성향이 정당 노선이나 이념보다 정당 지도자 한 사람에게 크게 좌우된 결과다. 그만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삼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3당 합당은 과거 한배를 타고 반독재 투쟁을 함께했던 민주진영의 결별을 의미했다.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말로 3당 합당 반대논리를 돌파했다. 그리고 호랑이를 잡았다. 하지만 대통령 김영삼에 대한 정치적·역사적 평가는 역사 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및 공직자 재산신고제 도입, 하나회 척결 등 적잖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후하지 않다. 임기 후반 IMF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이나 반민주세력과 결탁했다는 태생적 한계 역시 김영삼 저평가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노무현은 자신을 발탁한 김영삼을 따르지 않았다. 지조를 지켰다. 그러나 지조를 지킨 대가는 냉혹했다. 시인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지조는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재임 시에 비해 퇴임 후, 서거 후 노무현이 더 기억되는 것도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원칙과 명분을 중시했기 때문일 게다.

대통령 당선 전 노무현은 외로운 후보였다. 당은 자신들이 뽑은 후보를 끊임없이 흔들어댔고 후보 교체를 들먹이기도 했다. 당시 한 중진의원은 사석에서 노무현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명색이 KS출신인데 대학도 안 나온 노무현을 쪽팔리게 지지할 수는 없다. 그래도 DJ는 나이라도 많았는데 노무현은 나보다 어리다.” 주류는 비주류 노무현을 후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했다. 그는 결국 당을 떠나 이회창 캠프에 몸을 담았다.

최근 동교동계가 더불어민주당 합류를 타진했다 거센 당내 반발로 무산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찌감치 이회창 사람으로 변신한 중진도 동교동계였다. 이들은 DJ 정신의 계승자인 양 했으나 실제 정치행보는 DJ와 궤를 달리했다. 대선 전엔 후보 흔들기에, 당선 후엔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이후 일부는 박근혜 캠프로 가고, 일부는 반문재인을 선언한 안철수를 따라 국민의당에 합류한다. 그리고 안철수 유승민 합당 땐 안철수를 떠나 새집을 짓는다. 그 새집이 허물어지자 민주당 문을 두드린 것이다. 박근혜를 따른 동교동계는 염치가 있는지 민주당 주변을 기웃거리진 않는다. 그래도 한때 정권을 담당했던 세력인데 이들의 정치 행태가 구차하다.

동교동계만 비판받을 일도 아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또한 박근혜→문재인→반문재인으로 말을 바꿔 탔다. 그런데도 변절이란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건 현 정치구도가 과거처럼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아니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를 진보라고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이념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두 당의 이념 차이가 크다면 김 위원장이 그렇게 쉽게 이편저편을 넘나들지는 못했을 듯싶다.

흔히 정치를 마약에 비유한다. 끊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퇴장을 모른다. 이쪽에서 안 되면 기어이 저쪽에서라도 하려고 한다. 정치의 목적이 신념 구현에 있는 게 아니라 금배지 그 자체에 있어서다. 그러니 어제까지 ‘A는 좋다’고 했다가 오늘 ‘A는 나쁘다’고 하는 정치인, 지식인들이 숱하다. 신념의 변화라면 이해할 수 있으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에 따른 거라면 그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정치 발전에 이롭다.

조지훈은 신념이나 지조도 없이 시대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세태가 개탄스러워 1960년 지조론을 썼다. 당시에 비해 폭넓게 민주화 진전이 이뤄졌고, 사회를 의와 불의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도는 없어졌으나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세태는 여전하다. 소인기(少忍飢)하지 못한 이들에게 조지훈의 일갈은 지금도 유효하다.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