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14) 30㎏ 나무 십자가 지고 참회의 길 오른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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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신웅 (14) 30㎏ 나무 십자가 지고 참회의 길 오른 형제들

죄 뉘우치고 출소 후 신앙 확인하려 청송에서 서울까지 400㎞ 길 걸어 현재 노인 시설서 궂은일 하며 봉사

입력 2020-10-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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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청송감호소를 출소한 두 형제가 30㎏의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차도를 걷고 있다. 경북 청송에서 최종 목적지 경기도 고양 벽제까지 총 400㎞의 여정이었다.

1999년, 김영수는 7년의 형을 마치고 청송감호소를 출소했다. 그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각오로 동료 출소자 한명호(가명) 형제와 함께 길이 3m, 무게 30kg의 나무 십자가를 지고 청송에서 서울까지 장장 400㎞의 거리를 걸으며 참회의 여정에 오르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계획에 그들을 아는 지인들과 나는 완강히 반대했다. 진정한 참회는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지 일회적 고통은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무엇보다 오랜 감호소 생활로 두 사람의 체력도 양호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면의 신앙을 재확인하려 한다는 두 사람의 말에 승복했다. 참회의 노정을 통해 자신들뿐 아니라 동료들도 변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담겨있었다.

총 400㎞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나무 십자가와 옷가지 등 30여㎏을 짊어지고 걸어야 했다. 첫걸음부터 온몸을 적시는 장맛비가 내렸다. 안동, 문경, 음성, 이천, 서울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는 경기도 고양 벽제의 장애인 보호시설인 금빛사랑교회였다.

두 사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여정을 이어갔다. 십자가 행진에는 육체적 고통과 괴로움이 수반됐다. 문경쯤에 도착했을 때였다. 두 사람은 발바닥이 찢어져서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옷을 꿰매는 바늘로 얼기설기 찢어진 살을 대충 꿰매고는 또 행진을 이어갔다.

체력적 한계에 다다른 두 사람은 하루에 40㎞씩만 걸으며 쉬어가기로 했다. 나는 이들이 거쳐 가는 길목에 있는 큰 교회마다 전화를 했다. “출소자 두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거쳐 가는 길인데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당회나 제직회 결정 없이 마음대로 재워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남산에 올라가면 십자가의 불빛은 하늘의 별만큼 많이 반짝이고 있는데 ‘과연 그 많은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얼마나 될까’ 의심스러웠다. 두 사람이 겨우 몸을 뉜 곳은 길가와 여인숙, 작은 개척교회였다.

고통과 괴로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주변을 지나가던 차량 운전자들이 물과 음료, 음식을 건네며 격려했다. 안동대학교 입구부터 따라오며 취재한 MBC와 KBS 등 방송사의 도움도 이들이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공헌을 했다.

십자가 행진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영수 형제는 청송군 진보면에 소재한 무의탁노인 시설에서 하루 한 번씩 노인들을 목욕시키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궂은일을 하며 살아갔다. 그의 변화된 삶을 볼 때 진정 참회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십자가 행진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같이 이들에게도 목이 탈 때 물을 주시고 배가 고플 때는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심을 절감했다. 세밀하고 완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낀 ‘십자가 행진’이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