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주식·채권 권하는 정부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주식·채권 권하는 정부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입력 2020-10-22 04:06

채권은 얼마의 기간 돈을 빌리는 대가로 얼마의 이자를 주겠다는 차용증서다. 이 증서를 여러 사람이 거래하도록 정부가 인정한 곳이 채권시장이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채무자의 신용이 좋다는 뜻이므로 시장수익률이 떨어지고, 반대로 매수자가 줄면 수익률이 올라간다. 이 중에서 국채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가장 안정적인 자산으로 불린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 가운데 역시 미국의 재무부 채권이 가장 인기가 높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 언제든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채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4차례 6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느라 국채를 더 발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조차 특수상황임을 감안해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를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 방안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발언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국가부채 비율에 유연성을 두는 데 대해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까지 용인하고 나서는 등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 이후 국가부채에 관대한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는 늘어나는 국채 발행 부담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른바 기관 등 큰손들의 투자 전유물로 생각했던 채권을 개인들에게 팔 계획까지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20일 ‘국채시장 역량 강화 대책’을 통해 개인 투자용 국채 상품을 내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장기저축 유도가 목적이라며 30%의 가산금리에 전가의 보도인 세제 혜택까지 들고 나왔다. 과도한 혜택을 방지한다며 개인 구매 한도를 연 1억원 규모로 제한했다.

문제는 개인들이 국채에 오래 돈을 묵힐 만큼 매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21일 현재 연 1.5% 수준인 10년 만기 국고채의 예를 들면 10년 뒤 가산금리 30%(0.45% 포인트)를 더한 연 1.95%를 기대하고 이 국고채에 투자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자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적용한다고 해도 1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10년이나 20년 동안 발생하는 이자를 만기가 돼서야 원금과 함께 돌려준다고 한다. 이자를 복리로 계산하는 시중은행의 예적금보다 매력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들 금융기관은 중간에 목돈이 필요할 경우 해당 예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지만 국고채는 이런 제도도 없다. 무조건 만기 때까지 돈을 묵히되 돈이 필요하면 중도 환매만 가능하다. 세제 혜택은 없었던 일이 된다. 예컨대 5년 뒤 연 5.0%의 다른 국고채가 발행될 경우 기존 상품에서 갈아타기는 불가능하다. 말만 채권투자지 채권유통시장 참여가 봉쇄되는 것이다. 지금도 채권이 편입된 각종 펀드를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데 굳이 목돈을 10년, 20년 동안 국채에 묵혀놓으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다.

얼마 전 발표한 정책형 뉴딜펀드가 국민이 낸 혈세로 주식투자 손실을 메워주겠다는 그림이라면, 이번 장기국채 투자 상품은 1907년 대한제국 시절에 벌어졌던 국채보상운동처럼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 말고는 투자를 권유할 명분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주식 장기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거부해온 정부가 국채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이율배반이다. 최대 40%까지인 종합소득세 회피나 편법 증여 통로를 열어주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놓고 10~20년 뒤 빚잔치는 다른 정부에 떠넘기려 한다는 의심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