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심리적 보호대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심리적 보호대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10-23 04:05

발목 수술을 받고 회복하기까지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려 어느 정도 걷기가 편해지기도 전에 출근을 하게 됐다. 조금만 걸어도 시큰해지는 불편함을 줄이고자 고민 끝에 보호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살짝 힘을 줘도 쉽게 몸을 지탱할 수 있고, 피로함도 덜했다. 그 뒤로는 항상 보호대 차림인 나를 본 주치의가 어느 날 주의의 말을 건넸다. 수술 직후라 다리가 워낙 약해져 있으니 보호대가 더 큰 외상을 막아주고 재활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오래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보호대에만 의존하게 돼 정작 근육과 인대 발달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보호대가 심리적 방어기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기제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개인만의 습관 같은 것이다. ‘지식화’의 방어기제를 쓰는 사람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책에서만 답을 찾으려 들고, ‘투사’의 습관이 있는 사람은 힘들 때마다 남 탓으로 그 상황을 넘기려 한다. 즉 방어기제는 인간이 외부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으로 터득한 싸움의 기술인 셈이다.

이런 싸움의 기술은 어린 시절 낯선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로 당황스러울 때, 그나마 본인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편한 지름길처럼 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크고 복잡한 세상에서도 그렇게 한두 가지 기술에만 의존할 때 생긴다. 지금껏 잘 살아왔다며 다른 방법들은 폄하하고 내 방법만이 옳다고 하니 변화하는 시대에 다른 세대들과 더불어 살기 어려워진다. 나는 옳고 정당하게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툭하면 남들과 삐걱거리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몸의 일부가 돼버린 보호대를 막상 뺄 생각을 하니 덜컥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이 결국 과도한 심리적 보호대가 돼 내 몸과 마음이 보다 건강해질 기회를 뺏는 것이란 생각에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뎠다. 편한 익숙함보다는 이 서툰 걸음이 결국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