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바늘도둑 소도둑

국민일보

[세상만사] 바늘도둑 소도둑

전재우 사회2부 부장

입력 2020-10-23 04:05 수정 2020-10-25 18:47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뭉클하다. SBS ‘골목식당 포항 편’에 나온 조그만 식당 사장이 그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녹화가 3개월이나 중단된 동안 사장은 손님 없는 식당에서 차림표에 올릴 음식을 연구했다. 공책으로 서너 권 분량이었다. 녹화 재개 후에도 공책 분량은 늘었다. ‘덮죽’을 만들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포항에 간다면 꼭 들러 보고 싶었다.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덮죽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한 프랜차이즈업체에서 덮죽을 본뜬 메뉴로 배달 사업을 하고 가맹점을 모집한다는 사실이 포항 덮죽집 사장의 호소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프랜차이즈업체는 사과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대학 교수이면서 사업하는 친구의 SNS 담벼락에서 어이없는 이야기를 접했다. 사업의 이름과 내용, 상표 디자인을 네이버가 그대로 가져가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갖고 있던 핀란드 대표 캐릭터 ‘무민’ 사업권도 계약 연장을 못 하고 어느 대기업에서 가져갔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 친구, 20년 전부터 스타 관련 일을 병행해 왔다. 아이돌 그룹을 키웠고 일본에서 활동시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스타 관련 서비스 ‘팬십’을 기획했다. 자체 가상화폐로 전 세계 어디서나 특정 스타의 상품과 콘텐츠를 이용하는 서비스다. 이름 짓는 데 1년 넘게 걸렸다고 했다. 상표 등록도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전력을 다했을 터였다.

네이버는 2019년 3월 ‘팬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름도, 디자인도, 사업 내용도 친구 회사 서비스와 거의 같았다. 네이버에 항의했지만 아무 답도 없었다고 했다. 한 언론사가 취재하자 네이버는 이메일로 답을 해왔다. “상표권 등록 분야가 달라 법적으로 문제없다. 브랜드 개편과 이름 변경도 고려 중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건강과 사업 번창을 기원한다.” 이미 다 빼앗아 놓고 사업 번창을 기원한다니. 네이버는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사업 존재 여부, 법적 검토 등을 했을 것이다. 안 했다면 체계적인 회사가 아니다. 중소기업이 비슷한 사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몰랐다면 이런저런 설명을 했을 텐데 법적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니 여러 추정이 가능하다. 네이버 대표는 각종 설명회에 나가 상생을 얘기하면서 콘텐츠 제작자를 우대하는 유통 플랫폼 회사로 여겨 달라고 했는데.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삼성전자의 하청 중소기업 기술 탈취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임원은 계속 부인하다 녹취와 합의서를 공개한 후에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돌아가서 철저히 챙겨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해당 중소기업은 문을 닫기 직전인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니. 남의 얘기도 아니다. 기사 베껴쓰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런 행태를 하지 말든지 출처를 제대로 밝히든지 해야 한다. 베낀 기사가 덜 노출되면 좀 줄지 않을까 싶어 포털에 최초 보도를 우대하는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사람이 편집할 때다. 포털들은 ‘기사가 너무 많아 찾기 어렵다, 시스템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관련 기사 모으기는 잘되던데.

하위 직급자의 기획은 내 것이라는 상사도 있다. 기획서에 이름을 끼워넣는 건 애교스럽다. 아예 본인 이름으로 보고한다. 내 생각이 아니니 후속 보고를 못 하고 직원만 닦달한다. 회사 일인데도 그 상사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도 내놓고 싶지 않다. 그러면 무능한 직원으로 몰아간다. 저작권, 상표권 등 어려운 말 쓸 필요 없다. 물건이든 아이디어든 동의 없이 가져가면 도둑질이다. 도둑은 ‘잡범’이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