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빠른 배송 말고, 착한 배송

국민일보

[뉴스룸에서] 빠른 배송 말고, 착한 배송

강주화 산업부 차장

입력 2020-10-26 04:06

이제라도 나와 다행이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이 지난주 택배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음 달 중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을 포함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택배 노동자 사망 사고를 공개하고 시정을 요구한 데 업계와 정부가 응답한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택배가 급증하면서 노동자의 근로 여건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 같다. 지난 12일 숨진 한 30대 택배 노동자는 숨지기 전 동료에게 “오늘 420(개를) 들고나와서 지금 집에 가고 있습니다. … 저 집에 가면 5시,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해요. …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했다. 지난 8일 숨진 40대 택배 노동자는 하루평균 16시간씩 일을 했다. 그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늘은 더 늦어”였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는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가 있다. 설문조사 결과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주간 평균 71.3시간이다. 각종 수수료를 제한 실제 소득은 월평균 234만원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택배 노동자의 하루 평균 배송 건수는 247.3개였지만 코로나19 이후엔 313.7개로 26.8% 늘었다. 2016년 1명, 2017년 4명, 2018년 3명, 2019년 2명이었던 택배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자는 올해 13명(10월 25일 기준)으로 급증했다. 택배가 더 빨라지고 더 싸지는 사이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더 세졌고 이들의 희생도 커진 것이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자주 썼다는 ‘야수 자본주의’란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헬무트 전 총리는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야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경제 제도인) 자본주의가 인간을 잡아먹는 것을 막는 것이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의 책무”라고 했다. 지금 우리의 책무는 택배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분류인력 충원 외에도 산재보험 의무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6일제(일요일 휴무)인 택배 기사의 근무형태를 주5일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토요 배송을 계속하더라도, 택배 기사의 인력을 늘려 주5일제를 보장하는 방법이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월~금’ ‘화~토’로 근무일을 이원화하면서 주5일제를 확대했다.

속도 경쟁도 자제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지금 주문하면 당일 배송”이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모든 사람이 항상 ‘총알’ ‘로켓’ ‘새벽’ 배송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주말에 읽을 책이나 다음 달에 입을 패딩은 오늘 안 와도 된다. 택배 기사 사망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은 대개 “미안하다” “죄책감을 느낀다”이다.

빠른 배송이 아니라 ‘착한 배송’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소비자에게 ‘당일 배송을 안 해도 된다’는 선택지가 있으면 어떨까. 택배 기사의 노동 환경 개선에 힘쓰는 회사가 있다면 이곳만 이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비용이 더 든다. 택배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택배업체 순이익률도 1% 내외고 택배 기사에게 가는 건당 수수료도 몇백원에 불과하다.

택배업계는 속도에 따른 비용 차등 등 합리적인 비용 체계를 고민하면 좋겠다. 머지않은 미래에 무인(드론·로봇) 택배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이 직접 배송하는 택배는 느린 서비스로 남기고, 무인택배는 당일 배송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업계가 택배의 미래에 대비하면서 택배 기사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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