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보화와 진주의 비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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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보화와 진주의 비유 (3)

마태복음 13장 44~52절

입력 2020-10-2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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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를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당혹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밭을 산 사람의 윤리의식이다. 보통 보화가 땅에 있을 때 땅 주인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소유권은 발견한 사람에게 있다. 산삼을 발견한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당시 유대 법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아니다. 땅 주인이 보화의 주인이다.

그래서 비유를 보면 보화를 발견한 자가 바로 그것을 캐내어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일부러 땅을 사서 보화를 자기 소유 삼았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그러나 그 보화를 땅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본인이 가졌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 세상 사람보다 못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보인 행동을 정당하다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와 세상 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죄는 도덕과 윤리를 기준 삼는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성경에 나온 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타’,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이다. 이 단어의 뜻은 둘 다 ‘과녁에서 빗나가다’이다. 그렇기에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본분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인간에게서 발현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녁)으로 향하지 않고 빗나간 것은 죄이다.

이것이 세상의 죄와 어떻게 다른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도덕적 기준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이 순종이 죄가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불신자인 부모가 신자인 자녀에게 제사상에서 절을 하라고 할 때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도덕적 기준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방향성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크리스천 생활양식의 기준이 돼야 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보화와 진주 비유 뒤에 바로 이어지는 비유가 그물에 관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듯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때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는가. 좋은 것과 못된 것이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린다고 한다.

이때 좋은 것과 못된 것의 기준을 도덕적, 윤리적인 것이라면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을 그렇게 해석하기에 많은 사람이 구제 사업, 봉사, 기부 등 아름다운 선행에 힘을 쓴다. 이는 아주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복음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내 공덕과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실을 놓친다면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 보화를 사야지만 안심을 하는 사람이 된다. 재산을 판 희생이 있어야 구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비유를 다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진정으로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라고 묻는다.(51절) 이와 같은 질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진정으로 나는 복음을 깨달았는가’라고.

만일 오늘 당장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공로를 돌아보지 말자. 그리고 오로지 그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향하여 사랑을 표현하신 그분의 보혈만을 바라보자. 그때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주님 그러하오이다. 나는 내 공로가 아닌 당신의 공로로 천국 백성이 되었나이다”라는 고백 속에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될 것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