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100세 신학자’ 이장식 명예교수에게 2020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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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피플] ‘100세 신학자’ 이장식 명예교수에게 2020년을 묻다

“코로나19, 하나님 아닌 사람 중심 사회가 초래한 결과물”

입력 2020-10-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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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신학자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경기도 화성 ‘광명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한 세기를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00세 신학자 혜암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는 “창파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넓고 거친 고해 같은 인생길, 좌초의 위험이 언제든 도사리는 바다 한복판에서 그를 물가로 인도한 건 늘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했다. 한 세기를 살았다기보다 ‘한 세기를 살게 하셨다’가 맞는 말이라고도 했다.

지난 21일 경기도 화성의 은퇴교역자를 위한 처소 ‘광명의 집’을 찾았다. 1921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한국나이로 100세가 된 원로에게서 코로나19 시대의 인생과 세상살이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꺼낸 첫 번째 말은 최근 직접 쓴 한시의 첫 시구인 ‘경신앙천(敬神仰天),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였다. 노학자는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중심에 계셨다”며 “그러나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회가 된 것, 그것이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삶은 생존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강제 징용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6·25전쟁 때는 공산당으로부터 숨어야 살 수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는 피신해야 살았던 시대였고, 6·25 때는 은신해야 살 수 있던 시대였다”며 “내가 폭탄을 피하거나 총알을 피해갈 수는 없다. 결국 폭탄이나 총알이 나를 피해갔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45년 3월 징집돼 일본 가와사키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했다. 6·25전쟁 때는 조선신학대(한신대 전신) 교수라는 이유로 공산당원들에게 붙들려 1주일간 고문을 당했다. 동료 신학자 중엔 북으로 끌려가거나 총살을 당한 이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났다. 이 교수는 지금이야 이런 생명의 위협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의 근본 원인도 하나님 창조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데서 찾았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화를 입었다고들 한다. 맞는 얘기”라며 “천지를 만드신 건 하나님인데 하나님에 대한 존경이 없으니 자연 사랑도 그만큼 약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보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까 하는 데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에 대한 무차별 착취가 이뤄진다”며 “지금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욕심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올해 이슈가 된 목사의 과도한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그는 “결국 출세욕, 명예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섬기는 자가 돼야 하는데 지배자가 되려 한다”고 지적했다. 목사의 제1사명은 목양인데 지금 한국교회에는 목사가 교인들을 신학적으로 가르치는 게 없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네 젊을 때만 해도 장년주일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게 있느냐”며 “목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가르치느냐”고 반문했다.

오늘날 선교·전도가 안 되는 것도 신학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신학의 근본 목적은 선교에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교회 가자고 할 때 그냥 가자고 하면 되느냐”며 “교회가 어떤 곳이고 성경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르는데 어떻게 알리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땐 낮에는 사경회, 밤엔 부흥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경회는 없어지고 부흥회만 남았다”며 “신학으로 준비가 돼야 개인구원이 사회구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2시간 가까이 인터뷰에 응했다. 1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였다. 인생의 반 이상을 대학 강단에서 보낸 그답게 지금도 하루 반나절 이상을 책상에 앉아 한시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농담도 즐겨했다. “몇 년 전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성대는 그대로”라며 “교회에서 찬송을 하면 젊은 사람 못지않다”며 껄껄 웃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60년을 동행한 아내 박동근(90) 사모가 자리를 지켰다. 박 사모는 이 교수가 80세 때 케냐 선교사로 나갈 때도 함께했다. 운전을 못 하는 이 교수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고 아프리카의 험한 도로를 달렸다.

후배 신학자들과 제자들은 이 교수 100세를 기념해 최근 기념논문집을 발간했다. 교회사학자로서 학문적 업적과 신학, 선교 활동과 삶 등의 모습을 담았다. 모교 한신대에서도 100세기념문집 ‘우로’를 출판,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화성=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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