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간의 노동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간의 노동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입력 2020-10-28 04:03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은 최근 ‘인공지능(AI)을 위해 일한다, 데이터 노동의 등장’ 시리즈를 보도했다. 정부가 ‘데이터 댐’을 만든다는데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궁금해 시작된 취재였다. 데이터 댐은 AI를 학습시킬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만들어 쌓아두는 일이다. 이런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AI는 인간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 갈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데 그런 AI를 구현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아울러 인상 깊었던 점은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드는 데 인간의 판단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약 2년간 데이터 가공작업을 해온 40대 주부는 취재팀에 “인간이 해석해야 하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도로 위 점선의 끊어진 부분이 사물에 가려 점선이 마치 실선처럼 보이는 경우 ‘이건 실선이 아니고 점선이야’라고 판단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이 주부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담당 매니저와 상의하면서 데이터를 가공하고 있다. 인간이 지식을 생산할 때 하는 해석과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주부의 경험은 본래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지식을 기계가 어떻게 이해하도록 하는지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람과 달리 사회성이 없는 기계가 어떻게 인간처럼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지는 AI 분야의 오랜 관심사였다. 지금의 AI 모델에서는 사람이 처음부터 데이터에 사회성을 입혀 기계에 넣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도 AI 기술에 인간의 개입이 빠지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지금 잘 작동하는 AI도 새로운 상황과 맥락에 놓이면 가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때마다 인간이 지식을 새롭게 해석해 넣어줘야 AI 구동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AI가 인간을 공격한다든지 지배한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인간이 만든 데이터로 기계를 학습시키는 ‘딥 러닝’ 방식의 AI 모델하에서 이런 걱정은 공상에 그칠 것이다. 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을 뜻하는 ‘기술적 특이점’도 가까운 미래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걱정스러운 것은 데이터를 만드는 일자리의 질이다. 데이터를 수집, 가공하는 ‘데이터 노동’은 프로젝트별로 주문에 따라 일감이 생긴다. 노동자는 연속적으로 같은 일을 하기 힘들고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부당하게 일감을 받지 못할 경우 이들을 지켜줄 안전망도 없다. 데이터 노동의 세계에선 대부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또 다른 플랫폼 노동으로 볼 수 있는데, 데이터 노동은 소비자와의 접점이 없어 배달 대행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해외에선 이를 ‘유령 노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일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다. 데이터 노동자 5명을 인터뷰한 시리즈 4회 기사가 나간 뒤 독자 10명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모두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주부라는 한 독자는 “암 투병 중인 80세 노모를 모시고 있고 아들 학습지라도 시켜야 해 저도 꼭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울산에 산다는 독자는 “코로나로 업무가 줄어 월급이 줄었다”며 지방에서는 일을 구할 수 없는지 물어왔다. 또 다른 독자는 “사무직에서 30여년 근무한 뒤 정년퇴직한 사람인데 할 일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데이터 노동은 정부가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이 목표일 것이다. 그렇지만 질 낮은 일자리는 언제든 노동자의 불행을 부를 수 있다. 정부는 이 노동의 앞날을 내다보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을 함께해야 한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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