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칼럼] 2018년 4월 2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국민일보

[배병우 칼럼] 2018년 4월 2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20-10-28 04:01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월성 원전 즉시 가동중단 결정
산업부 느닷없는 반전에 당황 청와대 자의적 결정 가능성 ‘경제성 조작’에 관료 총력전
한수원 “원전 조기 폐쇄로 5652억 손실, 보전해 달라” 누가 이를 책임져야 하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관한 감사원 감사 보고서는 국민이 꼭 봐야 할 자료다. 한국 대통령제와 관료제의 타락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드라마에서 대반전은 2018년 4월 2일에 일어났다. 이날까지도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정부의 에너지전환(탈원전) 정책에 따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운영변경허가 때까지는 원전을 가동할 방침이었다. 원안위 허가에는 통상 2년 정도 걸린다. 이 같은 방침에 청와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월성 원전을 방문하고 돌아온 청와대 모 보좌관이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보고망에 올렸다. 이를 본 문재인 대통령은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되는지 이 보좌관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후 문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했는지 등은 보고서에 나타나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월성 1호기의 운명은 대통령의 질문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날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행정관을 통해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쪽으로 장관에게 보고하고 그 보고서를 보내 달라고 산업부 과장에게 전화했다.

다음 날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시기를 물었다는 등의 보고를 받은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한수원 이사회가 조기 폐쇄를 결정함과 동시에 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라고 곧바로 지시했다. 백 장관의 지시는 산업부의 방침은 물론 중장기 전력정책 기본방향으로 그 전 해 12월 말에 확정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어긋난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수명이 다한 뒤 7000억원을 들여 개보수를 해 2022년 11월 20일까지 운영하게 돼 있었다. 산업부는 기능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원전을 한수원 이사들이 바로 가동 중단시킬 경우 배임 등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또 2022년까지 운행할 수 있는 원전을 바로 가동 중단시키면 정부가 한수원에 보전해줘야 할 금액이 막대하게 늘어나는 점도 우려했다.

하지만 백 장관 지시 이후 ‘즉시 가동 중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총력전이 시작됐다. 월성 1호기가 쓸모없는 원전이라는 증거를 만들어내는 ‘고난도 작업’을 떠맡은 것은 산업부 관료와 한수원 관계자들이었다. 감사원 보고서 곳곳에는 경제성 평가를 사실상 조작하는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생생히 담겨 있다.

산업부가 2018년 5월 30일 작성한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에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와 관련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올 필요’라고 적혀 있다. ‘이럴 수가…’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어떤 대목에서는 이들이 청와대와 장관이 내린 일방적 결정의 희생양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산업부 과장은 “장관의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높게 나오면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실무자로서 회계법인에 경제성이 낮게 나오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경제성 평가를 맡은 회계법인 관계자는 “처음에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목적으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수원과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 버린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하는 내용의 메일을 전송했다.

백 장관의 업무 처리 잘못에 대해선 감사원이 명시했다. 앞으로 규명돼야 할 것은 2018년 4월 2일 청와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다른 경로의 보고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주무 부처가 까맣게 모르는 가운데 이렇게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 것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정책은 추진 과정이 적법하고 합리적이며 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핵심은 대통령이 다양한 의견 수렴 없이 자의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 한수원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관련 손실 5652억원을 보전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부는 한수원의 경영상 의사 결정이니 손실 보전을 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경제성 평가에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드러난 만큼 이 논리는 힘을 잃었다. 월성 1호기는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었고, ‘경제성 없음’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별문제 없는 원전의 즉시 가동 중단으로 입게 된 수천억원의 국고 손실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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