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함께하려는 女, 도망가는 男

국민일보

[청사초롱] 함께하려는 女, 도망가는 男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입력 2020-10-28 04:05

“당신, 오늘 친구와 점심 먹었다며?” 아내가 묻는다. “어, 햄버거 가게에서”라고 남편이 대답한다. “어땠어?”라고 아내가 다시 묻는다. “어, 치킨버거 먹었지”라고 남편이 대답한다. 잠시 당황한 아내가 “난 당신 친구에 대해 물은 건데?”라고 퉁명스럽게 되묻는다. 깜짝 놀란 남편이 상황을 수습하며 “아, 내 친구는 불고기버거 먹었어”라고 말한다. 급기야 짜증이 난 아내는 “아니, 둘이 무슨 얘기 했냐고!”라고 쏘아붙인다. “무슨 얘기라니?”라며 남편은 말문이 막혀버린다. 존 가트맨 교수가 쓴 ‘그녀를 모르는 그에게’라는 책에 나오는 남녀 대화이다.

남편은 처음부터 아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친절한(?) 추가 질문들 역시 남편의 뇌를 깨우지 못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내가 친구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다시 묻는다면 남편은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남편은 친구와 (문자 그대로) 나눴던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남편의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그날 친구와의 만남은 어땠는지다.

인간 관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여자들은 특별히 관계에 관심이 많고 때로는 민감하다. 연인 혹은 부부관계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왜 그럴까.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여자의 관계 민감성이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배우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질투, 가십(gossip), 감정, 사랑과 같은 단어들이 여자들과 자주 연동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한 설문업체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원하는 10가지를 조사했는데, 밝혀진 대부분 요구 사항은 관계와 관련이 있었다. ‘더 많은 대화하기’ ‘이야기 잘 들어주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본인과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 보내기’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기’ 등이었다. 남편과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그럼 남편이 아내에게 가장 원하는 10가지는 뭐였을까. ‘자유 시간’ ‘아내와 잡담 적게 하기’ ‘능력을 믿어주기’ ‘존경’ ‘인정’ 등이었다. 아내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꿈꾸며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남편은 아내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위대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급기야는 결혼 16년 만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에게 매달리며 결혼을 유지하려는 아내에게 그가 던진 ‘결혼 유지를 위한 4가지 조건’은 세상을 더 놀라게 했다. 그중에 3가지는 ‘나와의 개인적 관계를 포기한다’(예를 들면 집에서 함께 앉아 있는 것, 함께 외출이나 여행을 가는 것) ‘나에게 어떠한 친밀감도 요구하지 않는다’(허락 없이 먼저 말을 거는 것) ‘아이들 앞에서 나를 비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이다. 천재학자를 떠나서 남편의 입에서 결혼 유지 조건들로 이런 말들이 나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자들은 결혼 후에 호시탐탐 아내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탐한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며칠 묵다가 온다고 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남편이 많다고 한다. 결혼을 명분으로 남편을 구속하려는 아내와 아내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남편은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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