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화학물질 관리란

국민일보

[기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화학물질 관리란

계명찬 (한양대 교수·환경공학과)

입력 2020-10-29 04:02

현대인은 다양한 화학물질이 함유된 생활 화학제품들을 소비한다. 인간이 생산한 화학물질은 대략 1억4000만종이며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00종류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화학물질 중에는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독성이 높거나 내분비계 교란으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도 있다. 이런 물질들은 난임이나 태아의 발달 장애, 대사 장애, 호르몬 민감성 암·면역기능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물질들에 장기간 노출돼 있다. 20세기가 성능과 효과에 집착한 화학물질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인간과 자연의 건강성에 초점이 맞춰진 안전한 화학물질의 시대다.

정부는 기업이 덜 해로운 제품을 생산하도록 화학물질의 생산·가공, 소비, 폐기 과정에서 생물학적 안전성을 효과적으로 관리 운영해야 한다. 해로운 화학물질 사용을 관리하기 위한 대표적 사례가 유럽연합(EU) 화학물질 등록·평가·허가·제한에 관한 제도인 ‘REACH’다. EU에서 연간 제조 또는 수입량이 1t 이상인 화학물질은 등록하도록 하고, 완제품에 고위험성 우려 물질(SVHC)이 0.1%를 초과하거나 연간 1t 넘게 생산·수입되는 경우 유럽화학물질청(ECHA)에 신고토록 하는 제도다.

일본의 화학물질 심사 및 제조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화심법), 중국의 ‘C-REACH’, 한국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K-REACH)들도 이런 취지의 제도다. 화평법에서는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자료를 첨부해 등록하도록 하고 유해성에 따라 유독물질 및 중점 관리물질 등을 지정한다. 화학제품안전법에선 생활 화학제품에 함유된 성분이나 용기·포장의 안전성 관리를 위한 안전 기준 확인·신고, 위반 제품에 대한 제조·수입 금지, 회수·폐기 명령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 운용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일례로 비스페놀A의 경우 우려가 큰 환경호르몬인데 영수증, 캔 코팅재, 건물바닥 마감재, 플라스틱 용기 등에 여전히 사용된다. 비스페놀A를 함유한 생활 화학제품의 생산·소비를 적극 규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한다면 기업은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제품을 생산하려 할 것이다. 법 규제가 없는 한 생산을 계속하려 하는 기업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화학물질 개발과 생산 능력은 세계 일류다. 그런데도 유해성 우려가 있는 물질을 함유한 제품이 여전히 생산·소비되는 이유는 법적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증제도는 기업에 비강제적 압력으로 작용해 더 안전한 제품 개발을 유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사람과 자연에 덜 해로운 제품이 생산·소비되면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기업에도 강력한 시장 경쟁력이 될 수 있어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도 효과가 클 것이다.

계명찬 (한양대 교수·환경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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