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시저형! 세상이 왜 이래

국민일보

[샛강에서] 시저형! 세상이 왜 이래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입력 2020-10-29 04:07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 5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다. 이탈리아 고교 역사 교과서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지성’ 5가지라면서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기술한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명언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황제를 뜻하는 영어단어 시저는 카이사르(Caesar)에서 비롯됐다.

시오노 나나미는 14권 중 두 권에 걸쳐 카이사르를 다뤘다. 4권에서는 카이사르의 유년 시절부터 루비콘강을 건너는 40세 장년 시절까지를 그렸고, 5권에서는 로마에 입성하기까지 최고 권력자로서 하나둘씩 자신의 계획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5권 후반부에 카이사르의 말이라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사람’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보는 사람’ ‘보고 싶은 현실, 보고 싶지 않는 현실, 볼 수 없는 현실까지 보는 사람’ 등 사람을 3가지 부류로 나눴다. 카이사르가 결국 볼 수 없는 현실까지 직시하며 역사를 만든 영웅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대한민국은 저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성이 심화되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로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극단의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광장의 ‘편향 동화’(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하는 것), ‘사회적 폭포 현상’(소수의 믿음과 관점이 다수의 사람에게 확산되는 현상)이 더해지면서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정치·사회·경제적 이슈 등 다방면으로 범위도 점점 확대되고 극단화되고 있다.

구속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폭로로 검찰 내부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측과 윤석열 검찰총장 측으로 편을 갈라 상대방을 비판하기 바쁘다. 여기에 여론도 첨예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어떤 결과를 내든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이 횡행하고,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 해명이나 설명 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정치인의 행태가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임차인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지난 7월 동시에 도입된 이후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감정적 논쟁도 그렇다. 어제까지 ‘언니’ ‘동생’하며 살갑게 지냈지만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로 돌변해 버렸다. ‘부동산 전쟁’에 내몰린 장삼이사도 임대차 3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곳곳에서 편 가르기로 국민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로 몰아붙이는 서글픈 현실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위정자들은 통합은커녕 정치적 셈법으로 계산기만 두드리기에 바쁘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며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도 공허한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끊고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외쳤지만 결국은 화려한 수사에 그쳤던 과거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볼 수 없는 현실은 고사하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만이라도 들여다봤으면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설득력의 자질로 말이다.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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