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들

국민일보

[이지현의 티 테이블]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들

입력 2020-10-31 04:01

지금 삶이 우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당위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충돌할 때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당위적인 자아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집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해’ ‘승진하려면 완벽하게 일해야 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출세해야 해’….

그런데 그 조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수록 사회가 만들어준 신념에 맞춰 산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가 들어간다. 진정한 나와 사회적 역할을 혼동할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는 정신적·영적 동물이다. 매 순간 자신의 내면과 삶을 향해 진실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던진 질문만 들여다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잠든 내면을 깨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거의 같다.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선택의 가능성’이란 시의 일부분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아름다운 문체로 사색적인 작품을 주로 썼던 심보르스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을 ‘진정한 당신이 돼라’는 내면의 신호로 감지하자.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과 마주하고 지금까지 ‘거짓된 자기’를 깨닫는 순간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나는 인생 후반기로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만든 신념과 가치관은 미래의 나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지금 마흔 무렵을 살고 있다면 삶을 다운시프트(downshift)해야 한다. 자동차 운전 시 저단 기어로 변속해 속도를 줄이는 것을 ‘다운시프트’라고 한다. 마흔 이후엔 우리의 삶도 다운시프트해야 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청년기를 뒤로하고 시작하는 중년기는 “지금까지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앞으로도 이 같은 삶을 계속 살아야 하나?”란 질문에 답을 찾는 시기이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 시기엔 젊은 시절 추구해 오던 물질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생긴다. 삶의 방식을 ‘성취 지향적’에서 ‘관계 지향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 공간은 더 커지고 공허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떠밀려 살지 않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하신다. 성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질문들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되묻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최초의 질문이 등장한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후 두려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 하신 질문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란 질문은 실존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깨닫고 서 있어야 하는 장소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질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와 같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알고,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바로 아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다. 그 자리는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나는 누구인가’란 시에서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병약한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고 계신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현재의 바쁜 삶의 속도를 줄이고 미처 돌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본다면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