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참아요, 갈 데 없으니까” 코로나갑질에 우는 직장인들

국민일보

“그냥 참아요, 갈 데 없으니까” 코로나갑질에 우는 직장인들

수당·연차보상 멋대로 없애거나 비상근무 형태를 아예 제도화

입력 2020-10-29 00:0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협상 조건을 제시하는 등 회사들의 ‘임금협상 갑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꼼수로 사용했던 연차소진 강요를 아예 정식 취업규칙으로 못박는가 하면 임금인상분을 기부하라고 강요하는 회사도 있다. ‘코로나발 불황’으로 이직의 선택지가 없는 직장인들은 참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호텔 근무자 A씨는 지난 20일 ‘고과 수당 없음’ ‘연차보상 없음’ 등 부당한 조항이 담긴 계약서에 사인을 강요받았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줄어 연봉 인상을 못 해준다며 지난 2월부터 협상을 미뤄왔다. 직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공정 계약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하자 결국 사측은 ‘인상해주겠으나 소급 적용도 없고 나머지 항목에 다 수긍하라’고 통보하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코로나 꼼수’로 악용됐던 연차 강요는 아예 이 호텔의 정식 취업규칙이 돼버렸다. 소진하지 않은 연차에 대한 보상은 없으며, 그해에 사용하지 않을 시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홍역을 치를 때 근무시간에 아무렇게나 연차를 끼워넣는 등 직원들의 연차를 마음대로 이용했었다.

하지만 A씨와 동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계약을 받아들였다. A씨는 28일 “코로나로 재취업도 어려울 텐데 참아야지 어쩌겠느냐”며 “곧 구조조정한다는 말이 나와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이번 갑질이 끝이 아닐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금융권 종사자 20대 B씨는 이달 초 사측으로부터 “임금협상으로 발생하는 급여 인상분의 일부를 기부하고, 일부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임금 인상 혜택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기부에 따른 세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는 “이 시국에 임금 인상도 하고, 기부도 한다는 식으로 회사만 이미지 포장하는 거 아니겠느냐”며 “주변에서 잘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라고 할 테니 어디다 말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매출이 나아졌음에도 ‘내년에 어려워질 것’이라는 핑계를 대는 회사도 있다. 출판업에 근무하는 김모(27)씨 회사는 지난해보다 수익이 늘었으나 임금을 동결했다. ‘앞으로 힘들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당장 수익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미래에 재정이 어려워진다는데 별 해괴망측한 핑계를 다 댄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직장인 이모(29)씨 회사는 임단협이 진행 중이지만 그는 이미 임금 인상은 체념했다. 이씨는 “회사가 코로나19로 어렵다면서 은근슬쩍 계속 공지를 내리고 있는데, 연봉 삭감만 아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전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우리도 고생했는데 적절한 보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 실적 반등 조짐에도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 향상은 더딘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1.9% 포인트 상승했다고 전날 발표했다. 1, 2분기 역성장한 경제가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통계청이 같은 날 발표한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전체 임금근로자는 2044만6000명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11만3000명 감소했다. 임금근로자 감소세는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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