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문 대통령의 ‘우리 윤석열’

국민일보

[세상만사] 문 대통령의 ‘우리 윤석열’

임성수 정치부 차장

입력 2020-10-30 04:03

청와대가 지난 2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쟁’에 내놓은 유일한 공식 입장은 뜯어볼수록 묘하다.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도록 지시하거나 장관으로부터 수사지휘권 행사 여부를 보고받지 않았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수사지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강민석 대변인) 온 나라를 뒤집어놓고 있는 추·윤 전쟁에서 수사지휘권 행사로 ‘선전포고’를 한 건 추 장관이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청와대에 보고하거나, 청와대로부터 지시받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승인 없이 시작된 수사지휘에 대해 청와대는 그저 수동적으로 “불가피했다”고 했다.

청와대가 불붙인 갈등이 아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이 모든 혼란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그저 관전하듯 “불가피했다”고 논평하면 되는 것일까. 이런 ‘정치적 거리두기’를 통해 대통령은 정부 내 자중지란과는 무관하고, 경제와 방역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추·윤 전쟁은 문 대통령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40% 중후반대로 견고하다. 오히려 여권의 ‘윤석열 때리기’로 지지층이 결집한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정치적 득실로만 따진다면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굳이 적극 개입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정치적 책임성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공직자다. 범죄를 엄정히 수사할 검찰총장, 국가의 정의를 세우는 업무에 전념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협력은커녕 불구대천 원수처럼 1년 가까이 치고받고 있다. 국론은 덩달아 분열하고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 후유증이 여전한 상황에서 추·윤 전쟁은 다시 한번 나라를 갈기갈기 조각내고 있다.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고, 정리해야 하는 최고 책임자는 문 대통령이다. ‘지시하지 않았고, 보고받지 않았다’는 말로는 면책될 수 없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무슨 수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다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윤 총장은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임면권자(문 대통령)가 임기 동안 소임을 다하라고 하셨다”며 “총선 이후에 더불어민주당에서 사퇴하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을 전해주셨다”고 했다. 이 말은 오로지 문 대통령만이 윤 총장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책임자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말하면 듣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언론이 이 발언의 진위를 따져 물은 것도, 윤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이 추·윤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윤석열 총장”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임명장을 주면서 “검찰총장 인사에 이렇게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모인 적은 아마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신임 윤석열 총장에 대한 기대가 더 높다는 그런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윤석열’이라고 한 것은 ‘우리 편’이 돼달라는 말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주기를 바라고….” 우리 편 검사가 아니라 국민의 검사가 돼달라는 당부였다.

윤 총장이 그 당부대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당 비난처럼 ‘선택적 정의’를 통해 ‘정치’를 하고 있는가. 문 대통령의 판단을 듣고 싶다. 그 판단에 따라 윤 총장의 임기를 보장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침묵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침묵은 해답이 아닌 것 같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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