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이런 지경이면 차라리 기관 쟁송이 낫겠다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이런 지경이면 차라리 기관 쟁송이 낫겠다

입력 2020-11-03 04:01

추미애 장관의 잇따른 수사 지휘권 행사가 위법하다면 응분의 법적 조치가 합당
검찰 동요 심각한데도 대통령 침묵 계속된다면 권한 쟁송이 유일한 해결 방법
민주적 통제 프레임, 윤 총장 이후에도 검찰 짓누를 공산 커

지난달 22일 국회의 대검찰청 국감에 나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심경은 결연했던 듯하다.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 관련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해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또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의견을 낼 필요가 있을 때 검찰총장을 통해 하라는 것이지 특정 사건에서 지휘를 배제할 권한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대부분 법률가가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면서 위법까지 거론했다.

윤 총장의 발언은 직설적 화법에 특유의 뚝심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상황에서 모호하게 처신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드러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비상식적이라면 신명을 걸고라도 강하게 반대해야 하고, 위법하다면 검찰 수장답게 응당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 있는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것은 검찰총장으로서는 물론이고 공직자로서도 전혀 합당하지 않은 처신이다.

그는 “이 문제를 법적으로 다투면 법무검찰 조직이 너무 혼란스러워지고 국민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쟁송 절차로 나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 문제는 국가기관 혼란, 국민 피해를 우려해 피해갈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05년 김종빈 총장의 경우처럼 총장의 직을 던지고라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할 만한 무거운 사안이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지난 7월 채널A 사건에 이어 대검 국감 직전에도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해 윤 총장을 수사지휘에서 배제했다. 윤 총장 가족 및 측근 관련 수사 4건에 대해서도 윤 총장에게 지휘 중단 지시를 내렸다. 정부 수립 이후 60명 이상의 검찰총장이 거쳐 가는 사이 단 1건의 수사지휘만 있었는데 추 장관은 불과 3개월 사이 6개의 개별 사건에 수사지휘를 내렸다. 지휘 내용도 고강도다. 검찰청법 제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검찰총장을 수사에서 아예 배제하는 게 그런 지휘·감독의 범위 안에 드는지는 논란 대상이다. 더욱이 여권에서는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란 명분을 내걸고 공공연히 검찰 수사에 간여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한 번도 가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검찰 내부의 동요도 심상찮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남부지검장이 수사지휘권 발동 직후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는 글을 올리며 사표를 냈다. 추 장관의 SNS에 제주지검 검사가 ‘검찰 개혁은 실패했다’는 글을 올렸다가 개혁 대상으로 몰린 이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검사들의 동조 댓글이 280건 이상 달렸다. 이 정도면 검찰 조직의 혼란이 윤 총장이 우려했던 정도를 이미 넘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양 기관의 다툼을 대하는 국민의 염증도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사이 권한 논쟁은 양쪽 수장이 조용히 조율해 정제된 결론을 국민에게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 양쪽 의견이 끝내 대립할 경우 양쪽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조정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니 결국 쟁송 절차가 남은 방법이다. 국가기관 상호 간에 발생한 권한 다툼에 대해서는 법원에 기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헌법기관의 경우는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권한쟁의 심판 제도도 있다. 국가기관 간 다툼을 방치할 경우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국가의 기본 질서가 흐트러져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들이다.

갈등을 이대로 끌고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법적 조처를 함으로써 제3의 기관이 법리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당사자는 따르는 게 상책일 듯하다. 지금처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와 검찰 간 힘겨루기 양상이 계속된다면 양쪽 모두 신뢰와 권위를 잃게 될 뿐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 중 한쪽 혹은 두 사람 모두 직을 떠나더라도 문제가 잠복할 뿐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추 장관이 발동한 수사지휘권 선례는 윤 총장 이후 검찰에도 무거운 과제로 남을 것이다. 더 이상 국가 조직이 흔들리고 국민의 염증이 커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쿨하게 법적으로 정리하는 게 낫겠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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