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석 칼럼] 검찰과 사기꾼

국민일보

[오종석 칼럼] 검찰과 사기꾼

입력 2020-11-11 04:01
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증언과 편지로 사기꾼 논쟁
정치권은 각자 입맛대로 논평

대형사건 수사는 대부분 핵심 범죄자 말이나
그가 내놓은 문서 등 증거자료에서 출발

검찰 수사도 다 믿을 순 없어
진짜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 위해 검찰개혁은 꼭 필요


사기꾼은 남을 속여 이득을 꾀하는 사람이다. 범죄자들 상당수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에 속한다.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사기를 친다. 검사는 그래서 수사 과정에서 늘 사기꾼과 시소게임을 한다. 검사는 범죄자로부터 자백을 끌어내거나 범죄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 특히 범죄 리스트 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이런 것들은 검사가 수사할 때 가장 결정적인 단서로 활용하고 기소할 때나 재판을 할 때 결정적 증거자료로도 활용한다.

특히 지금까지 특수통 검사들은 대형 사건을 수사할 때 범죄자의 증언이나 범죄 리스트 등을 언론에 흘리면서 추가 수사에 활용하기도 하고, 수사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다. ‘○○○리스트’ ‘△△△게이트’는 대형 사건에서 흔히 나오는 말인데, 이것이 대부분 범죄자의 증언이나 메모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검찰이 흘리면 정치권은 늘 각자 입맛에 맞게 논평을 냈고,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내용에 대한 신뢰성 여부는 별로 따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고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최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발언이나 행각을 볼 때 그는 범죄자고 사기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그의 옥중 증언과 편지는 상황에 따라 여야 정치권을 흔들어 놓았다. 법정에서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증언이 처음 나왔을 때 야권에선 권력형 게이트라고 공격했고, 강 전 수석은 물론 여권에선 사기꾼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가 옥중 편지를 통해 현직 검사가 포함된 1000만원대 술접대와 야당 유력 정치인에 대한 억대 금품 제공을 폭로하자 이번에는 여권에서 검찰과 야권을 공격했고, 야권에선 어떻게 사기꾼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했다. 특수통의 대부격인 윤석열 검찰총장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얘기 하나를 가지고…”라며 김 전 회장의 발언을 무시했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을 못 믿고 어떻게 사기꾼을 믿느냐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왔다. 그런데 사실 모든 대형 사건 수사는 핵심 범죄자, 사기꾼의 말이나 그가 내놓은 증거자료에서 출발한다. 특히 권력형 게이트나 정치권 로비 리스트 등은 반드시 이런 사기꾼의 입에서 시작된다. 그가 털어놓은 자백이나 그가 제시한 증거자료에서 실마리가 풀리고, 이를 근거로 관련자를 소환조사해 추가 범행을 밝히는 게 일반적인 수사 과정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럼 검찰은 믿을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검사는 항상 공정하고 정의롭게, 진실만을 위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혹여 정권의 입맛에 따라, 검찰 조직을 위해 사기꾼 못지않게 국민을 기만한 일이 없다고만 할 수 있는지. 과거 숱한 고문 및 인권 유린 수사와 간첩 조작 사건 등은 제쳐두자. 최근 유죄 확정 판결이 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관련 무혐의 처분, 2013년과 2015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에 대한 무혐의 처분 등은 검찰 불신의 대표적인 사례다.

윤 총장은 9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차장검사 14명을 상대로 가진 리더십 강연을 통해 검찰 개혁 방향과 관련,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을 내세웠다. 그는 국민의 검찰은 검찰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는 물론 현재의 검찰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검찰의 주인이라는 보통 사람들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무시당하고, 쩔쩔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은 고위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용해 원만하게 해결한다. 특수통 검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해 1~2년 만에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대 수입을 벌어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검찰은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갖고 조직 보호 및 정치 권력과의 결탁을 위해 국민을 기만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을 ‘큰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을 위해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이유다.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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