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국화차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국화차

오병훈 수필가

입력 2020-11-16 04:03

국화향이 짙은 계절이다. 한 해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꽃.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을 뜻한다. 봄에 일찍 싹이 돋아나 가을 늦게 꽃을 피우니 군자의 덕을 지녔으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워 기상이 서려 있고, 술잔에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이다.

초의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나 전원에서 노닐면서 지은 글에서 ‘아침에는 목련꽃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국화 꽃잎을 먹는다’며 궁핍한 생활을 읊었다. 가난하지만 시류에 물들지 않고 국화처럼 고고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재배종 국화는 고려 충선왕이 원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러나 송의 범성대는 ‘국보(菊譜)’에서 ‘신라와 고려에서는 국화를 널리 심는다’고 했다. 백제 때 왕인 박사는 다섯 가지 색깔의 국화를 일본에 전했다.

진의 도잠은 일찍이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가 ‘귀거래사’를 지었다. ‘친구와 다니던 세 갈래 길 험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라고 읊었다. ‘동쪽 울타리 아래 핀 국화를 꺾어 들고 쓸쓸히 남산을 바라본다’는 국화야말로 사군자 중의 하나다. 꽃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식품이나 약으로 쓰기도 했다. 많은 책에서 노란 국화를 생으로 끓이고 말려서 쓴다지만 꽃 속에는 진딧물 같은 작은 벌레가 무수히 많다. 반드시 증기로 찌든지 끓는 물에 데쳐야 한다. 잎이 붙은 줄기도 함께 쓴다. 이것을 잘게 썰어 그늘에서 말려 두고 뜨거운 물에 조금씩 우려내면 향기로운 국화차를 즐길 수 있다. 꽃 색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산국이나 재배 국화, 구절초도 함께 쓸 수 있다.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몸에서 향기가 난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때 따뜻한 국화차 한 잔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자.

오병훈 수필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