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한계 달한 글로벌 축구계, 미래 먹거리에 한국도 동참

국민일보

[And 스포츠] 한계 달한 글로벌 축구계, 미래 먹거리에 한국도 동참

FIFA 공인 ‘eK리그’ 공식 출범

입력 2020-11-21 04:05
피파온라인4의 개발사이자 글로벌 게임업체 EA가 프로축구 K리그와 함께 ‘eK리그’를 출범시킨다. 국제축구연맹과 EA가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추진해왔듯이 온·오프라인을 결합해 새로운 축구 생태계를 만드는 계획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EA코리아 스튜디오 제공

섬세한 발재간으로 상대 태클을 피해내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슈팅을 날린다. 척척 들어맞는 팀플레이와 패스워크로 수비를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한다. 과감한 몸싸움으로 공을 지켜내고, 입이 벌어지는 선방으로 골문 앞을 막아선다. 무관중 경기 탓에 텅텅 비었던 경기장도 이곳에선 꽉꽉 들어차 있다. 골이 터지면 관중들로부터 쏟아지는 함성을 받으며 기상천외한 세리머니를 한다. 모니터 속 ‘FIFA(피파)’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축구다. 2020년은 세계 축구계에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축구장이 한참 동안이나 문을 닫았다. 선수들은 골을 넣고서도 관중 앞에서 축하를 받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팬들도 화면 안에서만 축구를 봐야 했다. 그러나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야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축구 무대가 있다. 온라인 게임 ‘피파온라인4’의 가상 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온라인 대회 ‘eK리그’다.

EA와 FIFA의 ‘그랜드플랜’

세계 스포츠게임업계 선두 EA가 세계축구계 최상위단체 국제축구연맹(FIFA)과 손을 잡고 게임 대회를 만든 건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A의 주력 게임 피파시리즈를 활용한 ‘피파e 월드컵(구 피파 인터렉티브 월드컵)’이다. 이 대회가 자리를 잡자 FIFA와 EA는 함께 유럽 네이션스리그를 본딴 ‘피파e 클럽월드컵’, ‘피파e 네이션스컵’을 각각 2017년과 지난해 출범시켰다. 피파e 월드컵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얻는 하위 대회다. 이들 대회에 걸린 총상금은 올해 기준 300만 달러(약 33억원)이다.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EA가 주관하는 ‘FUT 챔피언스컵’을 거쳐 각 지역별 컵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각 컵대회마다 참가자부터 제한되기에 각 개인들은 온라인 상에서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 매주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후 다시 컵대회에서 각 지역마다 토너먼트로 3~5번의 컵대회가 열리고, 이 경쟁에서 최상위에 속해야 지역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 실제 각 리그의 프로구단들이 참가해 열리는 피파e 클럽월드컵과 국가대항전을 모방한 피파e 네이션스컵 역시 비슷한 선발 과정을 거쳐 우승자를 가린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피파e 월드컵에서 맞붙는다.

세계적 인기 종목 축구를 총괄하는 FIFA가 이 대회에 자신들의 저작권을 부여한 건 단순히 이름을 빌려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실제 선수들이 뛰는 것과는 별도의 새 축구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라서다. 덕분에 피파e 대회는 단순한 게임 대회가 아닌, 세계 축구계가 인정하는 ‘축구’ 대회로서의 권위를 얻었다. 달리 해석하면 FIFA가 온라인 게임 피파시리즈 대회 역시 ‘축구’의 한 형태로 인정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극도로 상품화 돼 더이상 수요와 공급을 확장하기 힘든 현 축구계 이외의 영역에서 또다른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국=미개척시장? eK리그 탄생 의미
지난해 피파온라인4 일반인 대회 AFATT에서 K리그 각 구단의 선수복을 입고 피파온라인 경기에 참여 중인 축구팬들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FIFA와 EA의 ‘그랜드플랜’에 한국은 여태 온전히 포함될 수 없었다. 피파시리즈를 즐길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엑스박스 등 콘솔, 즉 비디오게임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였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 PC방 등의 유행으로 PC게임이 활성화 된 탓에 비디오게임이 더 보급되지 못한 특이한 시장 구조를 지녔다. 국내시장 공략에 한계를 느낀 EA는 궁여지책으로 국내 게임업체 넥슨과 협업해 피파시리즈의 온라인 PC게임 버전 ‘피파온라인’ 시리즈를 보급해왔다. 그러나 PC용 키보드를 쓰는 피파온라인 이용자와 비디오게임용 패드를 쓰는 피파시리즈 이용자를 한 대회에서 경쟁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거대 게임 소비시장인 한국을 포기할 수 없었던 EA는 어떻게든 이를 합쳐보려 애썼다. EA코리아 스튜디오에서 2014년부터 피파온라인 국제대회인 EA챔피언스컵(EACC)을 출범시킨 건 그래서였다. 이 대회는 피파온라인이 서비스 중인 한국과 중국, 베트남과 태국까지 아시아 지역 4개 국가에서 열린다. EA는 이 대회를 2018년 피파e 월드컵 본선 출전 중간 단계인 플레이오프 중 하나로 편입시켰으나 결국 ‘피파e 생태계’에 융합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애초 비디오게임인 피파시리즈와 PC를 쓰는 피파온라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EA는 두 시즌만에 EACC를 피파e 대회에서 도로 분리시켰다.

eK리그 출범이 의미심장한 건 이 지점에서다. 프로축구 K리그 주관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기획하고 한국e스포츠협회가 협력해 올해 시작하는 이 대회는 EA를 통해 개최부터 FIFA로부터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단일 국가 내 피파온라인 대회 중에서는 유일한 사례다. 이는 FIFA가 구상해온 ‘온라인 축구 생태계’에 포함됐다는 걸 뜻한다. K리그1과 K리그2 소속 22개 각 구단은 지난달 13일부터 예선을 열어 자신들을 대표할 선수들을 선발하고 있다. 3명이 1개팀인 이 대회에 출전신청한 팀은 총 594개다. 참가인원으로 따지면 1782명이다. 국내 PC방 게임 점유율 2위 피파온라인의 인기와 함께 잠재적인 국내 시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온·오프라인 융합된 축구 생태계

과거에도 K리그에는 구단별 e스포츠팀을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판교 디지털단지의 도시 성남을 연고로 하는 성남 FC는 지난해까지 4년 동안 피파온라인 유명 프로게이머 김정민과 계약해 EACC 대회에 출전했다. 전남 드래곤즈도 지난해 프로게이머 이호 등을 영입해 팀을 운영했다. 그러나 개별 구단 몇몇의 시도로는 이목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 구단 모두 지난해 수익성이나 홍보효과가 적다고 판단해 관련 사업을 중단시켰다. 성남 구단 관계자는 “eK리그 출범과 맞아떨어졌다면 시너지가 났을 텐데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새로 출범하는 eK리그는 운영 면에서 피파e 클럽월드컵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피파e 클럽월드컵에서 우승하는 팀이 최상위 대회인 피파e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듯이, eK리그 우승팀은 EACC 대회 한국대표 선발전 오프라인 예선 진출 티켓을 얻을 수 있다. 피파e 클럽월드컵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프로구단 예선에서 선발된 팀은 해당 구단의 공식 e스포츠 대표팀으로 위촉된다. 구단에서는 이들에게 고유 선수복을 제공하고, 주최 측에서는 게임 장비와 K리그 각종 행사 초대권을 제공한다. 총상금은 1700만원이다.

EA는 피파온라인의 최상위 대회로 EACC보다 한 단계 위 ‘e컨티넨탈컵’을 올해 시작하려 계획 중이다. 물론 이 역시 FIFA의 인증을 받아 진행된다. EA코리아 스튜디오 관계자는 “일년 간 EACC 성적을 바탕으로 최상위 16개팀을 선발해 피파온라인 최상위 대회로 삼을 계획”이라면서 “인기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의 세계 최강 실력자들이 출전하는 ‘롤드컵’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EACC 자체는 일반인들이 참가하기 어려운 대회지만 eK리그를 통한다면 그 길이 열린다. K리그 각 구단을 대표해서 피파온라인 세계 최고권위 대회 우승컵을 차지할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출발은 좋다. 대회 중계사 아프리카TV에서 이미 활동해온 피파온라인 BJ들은 경쟁적으로 대회에 출전해 동영상으로 온라인 상에 후기를 남기고 있다. K리그 각 구단 역시 직접 팀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으로 치르는 대회에 보조를 하는 형식이기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홍보효과를 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K리그라는 테마를 피파온라인에 적용시켜서 그동안 일반 K리그 팬들이나 피파온라인 이용자들이 진출할 수 없던 상위 대회에 나가는 새 통로를 만든 것”이라면서 “팬들에게는 큰 대회에 나갈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구단들에게는 대외 노출로 인한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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