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패싱 논란… 비대한 안보실 탓? 강경화 역량 부족?

국민일보

외교부 패싱 논란… 비대한 안보실 탓? 강경화 역량 부족?

각종 외교 문제서 존재감 희미… 현 상황에선 정부 홍보 역할만

입력 2020-11-21 04:05

지난 16일 외교부가 ‘이례적인’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대일 외교에서 외교부가 ‘패싱’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최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방일과 관련, 정부가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풀어가려는 구상을 그리는 상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외교부나 안보 부처 사이에 충분한 협의가 된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외교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부를 최일선 축으로 국회 등과 하나의 팀이 돼 범정부적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표면적 요소에만 근거한 단정적·추측성 기사’라고 했지만, 추측성이라고 하기엔 외교부가 패싱당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그동안 여러 건 있었다. 강 장관은 연평도 공무원 피살 사건이 있었던 9월 23일 청와대·정부 외교안보라인 긴급회의에 참석 요청을 받지 못한 사실을 국정감사에서 공개하며 이에 항의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지난달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 인사들과 접촉하지 못하는 이유를 강 장관이 설명하자 송영길 외통위원장은 “이수혁 주미대사가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과 잘 소통하고 있다. 제게 보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와 송 위원장은 20대 국회에서 각각 외통위 간사와 외통위 위원으로 함께 일했다. 양측이 직통으로 소통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외교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안이 중대할수록 외교부의 운신 폭이 좁아지는 경향은 있다. 예컨대 강제징용의 경우 “외교부가 대안 없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한·일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외교부가 자체적으로 대안을 갖고 일본과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때도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막후에서 컨트롤했듯 현재 강제징용 문제 역시 청와대가 키를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현재 외교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존재감이 없다는 평이 나온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중동에서 본 외교관들이 “편하게 일한다”며 외교부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후 생각이 바뀌어 정상회담 준비를 일임하는 등 외교부에 비중을 많이 뒀다고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역할까지 했다는 말이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외교부가 힘없는 부처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로 비대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꼽는 견해가 있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는 20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 시절 청와대 안보실 인원이 68명으로 역대 최다였는데 현 정권은 이보다 많은 것으로 안다”며 “원래 에이스를 국가안보실에서 데려가긴 하지만 인원을 이 정도로 둔 건 청와대가 모든 걸 쥐고 가겠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되면 외교안보 관련 부처들은 청와대 지침만 기다리게 되고, 특히 외교부는 대외 홍보만 도맡게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종건 전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이 외교부 1차관으로 직행한 것도 유사한 맥락으로 읽힌다. 최 차관이 임명된 지난 8월 송영길 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동안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중심이 되면서 외교부 패싱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최 차관이 가면) 외교부가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왕차관’으로 불리는 최 차관 부임이 청와대의 외교부 컨트롤을 심화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강 장관이 정부 ‘이너서클’에 들지 않는다는 점 또한 외교부 패싱 원인으로 지목된다. ‘원조 친문’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2017년 대선 문재인 캠프 안보상황단장을 맡았던 서훈 국가안보실장,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4선 의원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모여 외교 현안과 대북 정책을 논의한 오찬 회동에 강 장관이 초청받지 못한 일화가 알려지기도 했다.

외교부만큼이나 청와대의 컨트롤을 받던 통일부에선 이 장관 부임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도 나온다. 통일부 보도자료의 토씨 하나까지 확인하던 청와대가 이 장관이 온 이후 관여 수위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있다.

외교부 안에서도 청와대를 향해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6월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공식 초청한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행 G7 체제에 한국 등을 추가해 G11 또는 G12로 확대하는 방안을 언급했고, 이에 문 대통령이 “초청에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외교부에선 “실제 갈 수 있을지 여부를 어느 정도 조율하고 발표했어야 했다. 못 가게 되면 (정부 입장이) 뭐가 되느냐”는 말이 나왔다. 결국 G7의 확대 재편은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달 말 예정된 개각에선 강 장관이 일단 유임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강 장관이 유임되더라도 정부 홍보 외에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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