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알뜻 말뜻] 오늘의 아픔

국민일보

[최현주의 알뜻 말뜻] 오늘의 아픔

입력 2020-11-21 04:05

“아플 땐 어떤 느낌이세요? 뻐근하세요? 욱신욱신 쑤시세요? 콕콕 찌르는 것 같으세요? 끊어지는 것같이 아프세요?” 한동안 어깨에 통증이 있어 한의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침을 놓기 전 한의사는 늘 이렇게 물었다. 처음에는 빠른 사지선다형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이 의사선생님은 모든 환자들에게 매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깨는 뻐근하고, 목은 좀 당기는 듯?” 나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침을 맞고 누워 있는 동안 의사의 똑같은 질문과 환자들의 저마다 다른 대답을 듣느라 나도 모르게 다른 침상 쪽으로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아픈 느낌은 참 다양하구나.

어릴 적 소꿉장난에는 으레 병원놀이가 있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우거나 외국어를 배울 때도 아프다는 말은 일찌감치 배우게 된다. 행복한, 좋은, 예쁜, 나쁜, 바쁜, 그리고 아픈. 우리가 영어에서 가장 먼저 배우고 또 가장 자주 쓰는 형용사는 이 여섯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들은 대개 행복하거나 좋거나 예쁘거나 나쁘거나 바쁘거나 아프거나 이 중 하나의 상태에 있는가 보다.

영어 단어 ‘sick’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같은 뜻인데도 ‘ill’과는 용례가 좀 다르다. sickness에는 울렁거림이 있다. 구토증을 느낄 때 이 단어를 쓴다. 임신한 여자의 입덧은 morning sickness, 비행기 멀미는 airsickness 같은 식. 육체적인 구토 말고도 감정적인 구토증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를 쓴다. 난 네가 정말 메스꺼워 죽겠어, 진절머리 나. 이렇게 소리 지를 때 말이다. 이건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픈 것이다. 더 심각한 상태라면 영혼이 지친 거. 넌더리가 나, 몸서리쳐져, 신물이 나. 우리말에는 비슷한 말이 여럿이다. 뻐근하거나 욱신욱신 쑤시거나 콕콕 찌르는 것 같거나 끊어질 듯 아픈 것처럼 지긋지긋 아픈 일이 우리에게 이렇게나 잦았단 말인가!

sick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그리워하다’라는 뜻. 이상하다. 싫증나고 물린다는 말과 보고 싶고 그리워한다는 상반되는 뜻이 어떻게 한 단어로 쓰이게 된 것일까? 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알게 된다. 그리움도 아픔의 일종이라는 것을. 상사병은 그래서 lovesickness. 지긋지긋 싫어하는 것과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것이 둘 다 병이고,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라는 것을. 우리말 ‘뼈아프다’도 그만큼 간절하게 그립고 사무친다는 말이니, 깊은 사랑과 그리움도 통증인 것이 분명하다.

아픔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려니, 저절로 떠오르는 드라마 대사. “아프냐, 나도 아프다”. 벌써 17년 전 유행어지만, 연애어 사전에 올려도 될 만한 표현이었다. 그보다 훨씬 앞서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고 표현했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아픔의 대상이고 아픔의 부위이며 동시에 아픔의 증상이기도 한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인데 어른도 아프니, 어떻게든 우리는 평생 아플 수밖에 없는 존재. 오늘 당신은 무엇이 어떻게 아픈가?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