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코로나19와 성탄절

국민일보

[샛강에서] 코로나19와 성탄절

정진영 종교국장

입력 2020-11-19 04:02

며칠 전 여의도침례교회 국명호 목사의 전화를 받았다. 교회 앞마당에서 열리는 성탄절 트리 점등식에 혹시 참석할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교회가 있는 영등포구와 인근 동작구 보건소, 여의도성모병원, 성애병원 선별진료소 4곳에 각각 500만원씩 코로나19 격려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함께 갖는다고 했다. 국 목사는 올해 초 인터뷰이로 처음 인사를 나눴다. 서울음대 성악과를 나온 후 한국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50대 중반의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목회자다.

여의도침례교회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79년 방한했을 때 주일예배를 드린 곳으로 한국 침례교단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다. 국 목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염두에 두지 않았던 크리스마스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휩쓴 2020 한국교회에 예수 탄생은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올 한 해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초토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부터 기승을 부린 이 전염병은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나누는’ 예배의 일반적인 기능을 마비시켰다. 방역 단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지난봄 이후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예배드린 경우는 아주 적었다. 교회 안은 성도 대신 비대면 예배용 영상장비가 차지했고 입구엔 소독기구와 열화상 카메라가 자리잡았다.

코로나19는 사회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교회에 치명타를 날렸다. 예배의 파행은 물론 기도회, 부흥회, 세미나, 총회, 연합예배 등 교회와 교단, 교계의 행사가 잇따라 축소되거나 취소됐다.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모였던 부활절 연합예배도 올해는 서울 광화문의 새문안교회에서 소규모로 치러졌다. 교단장 등 소수 인사만 참석했다. 대구 광주 등 지역 교계는 연합예배를 취소하고 부활절 메시지를 채택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역의 부활절 연합예배가 불발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9월의 교단 총회 역시 온라인 형식을 취했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교단 행사인 총회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국 목사의 전화를 받고 처음엔 ‘코로나 와중에 성탄트리?’라는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한국교회가 성탄절을 계기로 힘을 얻어야 된다고 판단했다. 교회의 양대 절기 중 하나인 부활절을 조용히 보냈는데 성탄절까지 소극적으로 맞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예년의 경우 지금쯤이면 서울시청 앞에 대형 성탄트리가 세워졌고 성탄축하 공연으로 시끌벅적했다. 올해는 교계 차원의 성탄행사 관련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성탄트리를 설치하는 교회도 잘 안 보인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센터 앞에는 성탄 장식물이 들어섰고 대대적인 판촉행사까지 준비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조용하다.

엄혹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대규모 축하 모임을 갖고 요란하게 예수 탄생을 맞자는 뜻이 아니다. 방역기준을 철저히 준수하며 오프라인 프로그램은 자제하되 성탄의 참의미를 전달하는 데 소홀하지 말자는 얘기다. 성경의 메시지대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드러내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되겠다.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교회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예수 탄생이라는 지고지선의 교회 축일을 세상 눈치 보며 보내야 한단 말인가. 부활이 죽음을 이기고 소망을 확인한 사건이라면 성탄은 그 희망의 원천을 확약받은 현장이라는 것을 제대로 증거해야겠다.

예수는 이 땅에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왔다. 코로나19로 피폐해진 공동체에 예수 탄생은 그 자체가 빛이라는 진리를 당당하게 펼쳐야 한다. 그것이 역병의 시대,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싶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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