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백신이 만들어지면(2)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백신이 만들어지면(2)

입력 2020-11-20 04:01

코로나 백신 사용 승인돼도 배송과 보급 등에 난관 많아
거액 들여 먼저 챙긴 미국은 감당할 방법 찾느라 고민 중
독감백신 파동 겪었던 한국 지금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효율적인 노하우 찾는다면 후발 접종국과 충분히 나누길

제약업체 화이자는 미국 미시간주의 칼라만주라는 도시에 생산설비를 갖고 있다. 여기서 코로나 백신을 만든다. 위스콘신주에도 설비가 있고 유럽 벨기에에서도 생산하지만, 미국에 공급할 백신은 주로 칼라만주에서 충당할 계획이다. 다음 달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다면 인류가 기다려온 코로나 백신은 이곳에서부터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현지 언론은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대의 배송작전이라 부르며 시간과의 싸움이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화이자 백신의 포장 방식은 이렇다. 1회 접종분을 1도스라고 하는데, 먼저 다섯 도스를 한 바이알(주사용액을 담는 작은 병)에 담는다. 그 바이알 195개를 운반용 트레이에 끼우고, 그런 트레이를 최대 5개씩 슈트케이스처럼 생긴 초저온 아이스박스에 넣으면 배송 준비가 끝난다. 하나에 5000도스 가까이 들어가는 아이스박스를 화이자는 재활용이 가능토록 제작해 10만개 확보했다.

포장이 완료되는 순간, 째깍거리며 한정된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드라이아이스를 잔뜩 넣어 영하 70도를 유지하는 아이스박스의 보존 기간은 열흘에 불과하다. 드라이아이스를 리필해도 겨우 닷새가 늘어날 뿐이고, 리필용 드라이아이스는 덩어리가 아닌 알갱이라야 해서 몇 백 달러씩 든다. 드라이아이스는 항공기 반입이 제한된 위험물질이기도 해서 항공 운송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운송을 지원할 물류업체 UPS와 페덱스는 이런 이유로 미국 각지의 병원과 보건소에 백신이 도달하기까지 나흘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스박스에는 GPS 센서와 온도계가 부착돼 있다. 분실되지 않는지, 변질되지 않는지 위치와 온도를 실시간 관찰한다. 백신을 먼저 맞거나 내다 팔려고 탈취하려는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백신 트럭과 똑같은 가짜 트럭을 운송 루트에 투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백신이 도착하면 병원과 보건소에 주어지는 시간은 남은 보존 기간 엿새뿐이다. 그 안에 아이스박스 하나당 5000명씩 접종을 마쳐야 하는데, 이 박스는 하루 두 번만 열 수 있고 3분 이상 열어둘 수 없다. 그래야 영하 70도가 유지된다.

까다로운 배송과 보관 문제를 극복해도 여러 난관이 남아 있다. 의료인력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백신 접종 대상자는 한 시간에 여섯 명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한다. 꽁꽁 얼린 백신을 해동하고, 피접종자 상태를 점검하고, 복잡한 안전수칙을 지켜야 해서 그렇다. 이렇게 더딘 속도로 제한된 시간 안에 백신을 소화하려면 많은 의료인이 치밀한 사전교육 아래 투입돼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는 피접종자이기도 하다. 접종 후에는 상태를 관찰하느라 곧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도 없다. 병원이 의료 기능을 유지하며 종사자 접종을 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어찌어찌 해서 의료인 접종을 마친 뒤에는 또 다른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 부족한 백신을 누구에게 먼저 맞힐 것인가, 그들을 제 시간에 접종 장소로 불러 모을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 백신의 안전성을 신뢰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모더나 등 여러 백신이 승인될 경우 각기 다른 배송·보관·안전수칙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백신마다 호불호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런 고민은 전부 미국의 몫이 돼 있다. 화이자는 연내 5000만 도스를 생산할 계획인데, 절반이 미국에 공급된다. 공평한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 백신 프로젝트 코백스(COVAX)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아직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9개국이 수억 도스를 선점한 상태다.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이 발표대로 95% 효과를 보인다면 인류가 만든 백신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홍역 백신과 맞먹는 수준이다. 불과 300일 만에 그것을 해냈으니 놀라운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누군가 말한 것처럼, 과학이 지식을 축적하는 속도에 비해 사회가 지혜를 찾아내는 속도는 많이 느리다. 백신 빈익빈부익부는 이번에도 벌어졌고, 먼저 챙긴 나라도 그것을 감당할 방법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다. 백신 구매 대열의 비교적 앞쪽에 있다는 우리에게 차례가 왔을 때 혼란 속에서 낭비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독감 백신 파동을 겪은 터라 더욱 그렇다. 그 과정에서 효율적인 노하우를 얻는다면 우리보다 뒤에 백신을 접하게 될 저개발 국가와 충분히 공유하면 좋겠다. 그것이 과학의 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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