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안산 자락길에서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안산 자락길에서

오병훈 수필가

입력 2020-11-23 04:08

안산 자락길은 서대문 안산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이다. 서울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신촌 봉원사에서 출발하면 쉼터가 나오고 독립문역으로 내려갈 수 있다. 가장 짧은 코스이기도 하다. 한 바퀴를 완주한다고 해도 세 시간이면 충분한 산책로. 도중에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있어 노랗게 물든 단풍이 절경이다. 약수터를 지나고 단풍 터널을 걸을 때 시야가 탁 트이면서 하얀 바위가 드러났다. 이쯤에서 땀을 식히게 되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뒤따르는 이들을 기다려주는 곳. 이런 산자락까지 아이스바를 갖고 와 팔고 있을 줄이야. 우유 맛, 멜론 맛이 나는 아이스바를 한 개씩 골랐다. 젊은 장사꾼이 등산객에게 아이스바를 들고 비닐 껍질을 까서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남에게 위생상 불결하게 보일까 봐 주방용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다.

“껍질은 제게 주세요. 살림에 보태려고요.” 쓰레기가 함부로 날아갈까 봐 미리 거두려는 그 마음씨에 믿음이 갔다. 그러고 보니 커다란 부대 두 개를 준비했는데 하나는 비닐을 담았고 다른 하나는 나무막대기가 담겨 있었다. 이토록 철저하게 쓰레기를 수거하려는 마음씨가 아름답지 않은가. 누군가 그를 두고 불법 장사꾼이라 할지 모른다. 이 산중에까지 시원한 먹거리를 갖고 와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베푸는 그 정성이 얼마나 고마운가. 게다가 쓰레기가 산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건전한 마음씨.

나이 지긋한 부인이 땀을 흘리며 올라와 바위에 걸터앉아 배낭에서 귤을 꺼냈다. 먹고 난 껍질을 손에 들고 있는데 “저, 귤껍질 제게 주세요. 가지고 산에서 내려가실 때 무거울 테니.” 그는 빼앗다시피 귤껍질을 받아 봉투에 담았다. 왜 남의 쓰레기까지 치워주느냐고 물었더니 “손에 쥐고 있다가 멀리 던져버리면 치울 수도 없어요. 냄새를 맡은 멧돼지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익살스러운 그가 밉지 않다. 마음으로나마 건전한 젊은이의 성공을 빌어본다.

오병훈 수필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