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정치인의 인성은 골동품이 아니다

국민일보

[국민논단] 정치인의 인성은 골동품이 아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0-11-23 04:03

정치인의 인성은 골동품인 양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있으면 좋으나 없어도 큰 불편 없이 잊을 수 있는 것, 무언가 가치가 높아 보이나 왠지 구닥다리 과거의 것…. 그래서 인성은 요즘 정치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규범, 제도, 행태 등이 핵심적으로 주목받는 반면 정치인의 인성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주류 현실주의 관점에서는 정치인이든 일반 유권자든 인간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존재로 획일적으로 가정된다. 이상주의 관점에서도 도덕심을 일반적으로 발현시키는 데 목표를 둘 뿐, 개별 정치인의 상이한 인성이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도외시한다. 정치 현장에서는 더 그렇다. 정치인의 능력만 중시되고 인성은 교장 선생님의 정례 훈시처럼 딱히 반박할 수 없으나 확 와 닿지 않는 공허한 개념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경향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 장관, 의원, 지자체장, 혹은 정치권의 누구에게도 인성은 필수품이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속임수에 능하다면, 양심에 충실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원칙을 저버린다면,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만 내세운다면, 온건·온후한 품성 대신 극단적이거나 변덕스러운 기질에 휘둘린다면,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수치심도 없이 남 탓만 한다면, 시기심과 피해의식에 젖어 비상식적 궤변·기행을 남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체제는 심각한 혼란, 대립, 교착에 빠질 것이고 공정과 정의를 향한 방향감각은 실종될 것이다. 특히 높은 위상의 정치인일수록 그릇된 인성은 큰 폐해를 낼 것이다. 일상생활의 인간관계에서는 일차적으로 인성을 보는데 정치권에서 인성을 골동품쯤으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면교사의 예다.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은 차치하고 인성에 있어서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그의 인성 상태를 보여주는 온갖 사례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기에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일반인이었다면 진작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추방되었을 정도다. 근래 미국을 도탄에 빠뜨린 주범은 그의 능력적 한계가 아니라 인성적 결함이다. 물론 더 거시적·구조적인 문제들이 미국을 근본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그의 인성이 좀 좋았다면 이 정도로 힘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의 인성으로 인한 국정 파탄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정치인은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졸렬한 인성으로 정치를 과도한 갈등과 균열로 몰아넣었다. 그들의 낮은 인성으로 공정과 정의란 말은 무색해졌고 국민의 정치 불신은 임계선을 넘었다.

몇 년 전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은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정치가 바로 서서 국민 행복을 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인과 유권자가 인성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륜가답게 절감했을 것이다. 이념과 이익에서 다른 생각을 해도 어느 수준의 인성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존하며 체제 작동의 공동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정치 원로로서 체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성을 경시해온 척박한 정치 풍토에서 정 의장의 외침은 큰 메아리를 내지 못했다. 그가 초야로 돌아온 후 정치권에선 그나마 명맥이 끊겼다.

근래 정치권은 인성을 강조하기는커녕 반대로 가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과거엔 숨기는 척이라도 했을 비열한 행동을 대놓고 하며 부끄러운 기색도 안 보인다. 명분과 이상은 남 비난할 때만 쓰고 나와 관련해선 떠올리지도 않는다. 인성 문제로 인한 논란은 버티면 결국 흐지부지될 거란 배짱으로 나오기도 한다. 급기야 이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겠단다. 정치인의 인성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말이다. 정치인의 인성 결함이 세계 곳곳에서 해악을 낳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암담·참담해진다.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벽장 속 골동품처럼 방치된 인성 문제를 정치권의 중심 무대로 가져와야 한다. 학계는 일반화 차원의 이론 정립이 힘들더라도 정치인의 인성에 대한 적실성 있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경각심을 갖고 정치인들의 능력과 인성을 두루 보며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인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들의 인성은 체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길게 남긴다. 후대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길 순 없지 않은가.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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