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출구 없는 부부의 전쟁

국민일보

[청사초롱] 출구 없는 부부의 전쟁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20-11-25 04:02

“‘우리 한 지 되게 오래됐는데 안 해? 해야 하지 않아?’라고 울면서 얘기한 적도 있어요. 거부당할 때 자존심도 상했었고 내가 왜 이런 거를 구걸해야 하는지…. 이제 내가 남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애로 부부’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아내가 토로한 말이다.

다른 회에서는 30년 결혼생활을 한 아내가 60대 중반 남편의 왕성한 성욕을 감당할 수 없어 매일 피해 다닌다며 괴로워했다. 이 말에 남편은 매일 하고 싶지만 아내를 배려해서 일주일에 2회 정도만 하려 한다고 했다.

섹스를 자주 하고 싶지만 남편이 너무 안 해서 괴로운 아내…. 섹스를 하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너무 자주 원해서 괴로운 아내…. 동전을 뒤집으면 이것은 바로 남편의 괴로움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 요구하는 아내…. 더 자주 하고 싶지만 계속 거부하는 아내…. TV에 나오는 특별한 부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섹스 문제는 많은 부부가 가장 빈번하게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자존심’과 ‘구걸’이라는 단어들이 섹스 문제로 다툴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섹스는 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즐거운 행위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많은 부부가 섹스 문제로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남자와 여자의 성욕이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욕의 크기가 다르니 갈등은 예정된 순서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남자의 성욕은 여자보다 훨씬 강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가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는 여자보다 여섯 배나 높다고 한다. 한 조사에서는 60%의 남자들이 하루에 한 번 이상 섹스를 생각한다고 한다. 부부관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맨 교수가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가지는 가장 큰 불만 두 개가 ‘툭하면 싸우는 것’과 ‘섹스 횟수가 너무 적은 것’”이라고 할 만큼 남자들은 성욕이 강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남자는 섹스를 더 자주 하려고 하고 여자는 거부하려고 한다.

둘째는 섹스를 왜 하는지, 혹은 언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성차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가트맨 교수에 의하면 남자들은 섹스를 통해 상대방과 친밀감(가까움)을 느끼려 하고 여자들은 반대로 상대에게 친밀감을 느꼈을 때 섹스를 한다고 한다. 남자에게 섹스는 친해지기 위한 수단인 셈이고 여자에게 섹스는 친한 후의 결과인 셈이다.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애로 부부’에 출연한 한 남편은 “우리는 싸우고 나면 다음 날 부부관계를 해요. (부부관계) 한 번 하고 나면 싸운 거 다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아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화가 안 된다. (그럴 때는) 기분이 꿀꿀하다”고 대꾸했다.

셋째, 섹스는 대체물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후에는 배우자를 통해서만 섹스가 이뤄진다. 그래서 배우자가 거부하면 섹스는 이뤄지지 않고 성욕은 채워지지 않는다. 섹스에 대해 서로가 서로에게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부분이 섹스 갈등을 첨예하게 한다. ‘애로 부부’에서 한 아내가 남편에게 “내가 정말 분할 때는 너를 1년 동안 굶길 거다”라고 이야기했고 남편은 “밥은 굶어도 그건 포기 못해. 굶긴다는 말이 제일 무섭다”라고 답했다. 섹스를 거부당했을 때 자존심이 무너지고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부당했을 때 치사하지만 구걸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부부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출구 없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전쟁. 더 하고 싶은 남편은 아내의 친밀감을 먼저 채울 필요가 있고 아내는 ‘섹스 독점권’을 무기로 삼기보다 남편의 처절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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