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성장하지 않는 사회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성장하지 않는 사회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입력 2020-11-25 04:07

2020년은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드는 첫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8월 인구 동향’을 보면 올해 1~8월 출생아는 18만8202명, 사망자는 20만1648명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더 많았는데 올해 역전이 시작된 것이다. 2020년은 대한민국 인구 감소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최소 수십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를 덜 낳는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자연적인 인구 감소는 처음 겪는 일이다. 선사시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한반도 인구는 완만하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증가는 1960년대부터 폭발적 수준으로 진행되다 이제 추세 전환의 지점에 이르렀다. 전쟁이나 학살, 굶주림이 아닌 인간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 맞는 인구 감소의 시대,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구 증가가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기에 생산과 소비가 활발할 수 있었다. 생산과 소비의 증대는 기업과 산업의 성장, 더 나아가 나라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도 그 기저에는 인구 증가가 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의 근대화는 인구 증가와 궤를 같이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된 근간은 이민을 바탕으로 한 인구 자원 확보였다.

인구 감소는 그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성장’이 미래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 선진국 성장률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의 지구인 상당수는 이례적 성장을 경험한 행운의 집단이다. 20세기 후반만큼 인구와 경제 성장이 비약적으로 이뤄진 시기를 과거 역사에서 찾기 어렵다.

우리의 사고는 성장에 익숙해져 있다. 현재 우리는 수도권에 광역고속철도(GTX)를 깔고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는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구 감소의 시대에는 새로운 인프라 구축과 확장이 비정상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성장하는 사회는 잉여 가치의 투자, 고용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냈지만 성장하지 않는 사회는 이러한 선순환이 어려울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저출산은 국가적인 위기’라고 외쳐온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응 방법은 인구가 줄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으로서는 인구 감소의 속도를 늦추는 게 최선인데 현 정부는 이마저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출산율은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잘사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가 됐다. 성장하지 않는다는 게 꼭 가난한 시대로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어느 정도 삶의 질을 누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을 때 ‘성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성장한다고 인간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팀 잭슨은 2017년 책 ‘성장 없는 번영’에서 “끝없이 많은 상품을 쌓아놓지 않아도 인간은 번영할 수 있다.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장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적지 않다. 성장을 추구하는 동안 자연환경은 망가져 대기에는 오염 물질이, 땅과 바다에는 쓰레기가 늘고 있다. 사람이 일하는 조건은 황폐해졌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일은 다른 가치에 의해 뒷전으로 밀렸다. 성장하지 않는 사회는 이런 가치를 회복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