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오일장 패션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제주도 오일장 패션

박두호 (전 언론인)

입력 2020-11-28 04:08

저녁에 모여 노는 멤버 가운데 50대 후반 목수가 네덜란드 맥주 브랜드 이미지가 새겨진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멋진데” 했더니 “오일장에서 산 거”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마크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했다. 보기 좋고 자기의 큰 머리에 맞아 샀단다. “우리가 가끔 먹는 그 맥주회사야” 했더니 답은 “그 맥주가 유명한 거구나”였다. 하루는 괜찮은 야상을 입고 나타났다. 이것은 세화오일장이 아니라 제주오일장에서 산 거라 급이 다르단다. 옷이 필요하면 이들은 언제나 오일장으로 간다.

이 목수와 밤낚시를 했다. 날이 추워 나는 고어텍스 낚시복을 입었다. 한참 지나 그가 “밤낚시에는 이 옷이 최고예요”라며 입고 있는 옷을 보인다. 만져보니 뻣뻣하고 두툼한 소재였다. 우비란다. “이게 제일 비싼 제비표예요”라고 자랑했다. 그로부터 시멘트, 목재, 연장 등 어려운 건축 관련 제품 상표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옷 브랜드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다. 제비표 우비.

60대 중반 한 명이 평소와 달리 멋진 주황색 패딩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미국 아웃도어 제조회사 C사의 최신 모델이다. 적어도 광고에 나오는 브랜드 옷을 그가 입은 것을 나는 처음 본다. “좋은 옷 입었네”라고 했더니 브랜드 로고를 가리키며 “이게 뭐라?”고 물었다. 나는 “좋은 거야”라고 말해줬다. 딸이 사 온 것이었다. 트랙터로 농사를 하는 이 사람은 평소 오일장에서 산 작업복에 장화를 신는다. 어머니가 오일장에서 사준 옷을 입고 자랐고 그래서 브랜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다른 애들도 그랬으니까. 요즘 밤이 되면 빨간 바지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성산읍 콜라텍에 간다. 인기가 좋단다. 그는 100억원대 토지가 있는 부자다.

60대 초반 한 명이 마을 모임에 요즘 젊은이 사이에 인기 있는 거미 무늬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다. 생소한 브랜드가 궁금한 주민 몇 사람이 무슨 옷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나마 메이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 “오일장에서 산 거야”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이 옷은 짝퉁이 아니라 진퉁이었다. 여자 친구가 선물한 것이다. 이 사람 돌싱이다.

이들이 모이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낚시와 관련된 상품이다. 하루는 일본 S사 제조 전동 릴을 찾아보고 있었다. 쇼핑몰에서는 180만원 전후였다. 이들은 어느 낚시점에서 그보다 싸게 파는데 AS가 된다든지 안 된다든지, 중고매장에는 얼마에 나왔다든지 등을 따지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이런 릴이 이미 한두 개는 있다. 180만원짜리 릴은 몇 개씩 사는데 18만원짜리 옷은 사본 적이 없고 1만8000원짜리 점퍼를 오일장에서 산다.

세화오일장은 제주 동부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이곳 점포 150여곳 가운데 등록된 옷가게는 28곳, 면적으로는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곳 주민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해석된다. 제주도민 패션의 딱 이 정도는 오일장이 지배한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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