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엘 시스테마, 꿈의 오케스트라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엘 시스테마, 꿈의 오케스트라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입력 2020-11-26 04:04

2000년대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예술계와 교육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오케스트라 중심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덕분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정치가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1975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면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는 정부의 지원 속에 전국으로 확대됐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엘 시스테마를 접한 뒤 학교 중퇴율과 범죄율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엘 시스테마에서 음악을 배운 아이들 가운데 저명한 프로 음악가도 여럿 나왔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2004년 독일에서 열린 제1회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후 2009년 28세의 나이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음악감독이 된 것은 엘 시스테마 신화의 정점을 찍었다. 엘 시스테마는 세계 각국에 소개됐으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한국에서도 2008년 두다멜이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 것을 계기로 엘 시스테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꿈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2010년 전국 8개 거점기관에서 단원 470명으로 시작해 현재 49개 기관에서 28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누적 단원은 1만9700여명, 강사는 4000여명에 이른다. 운영 비용은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3년간 지원하고 이후 3년은 지자체가 절반을 부담한다. 그 이후엔 지자체가 전담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표방하고 출범한 꿈의 오케스트라가 10주년을 맞은 해다. 원래대로라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연주회가 열렸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모두 취소됐다. 그러다가 지난 17일 10주년 기념 공연 ‘아이 콘택트(I CONTACT)’가 유튜브를 통해 중계됐는데, 감동적이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공연은 같은 시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것을 중계한 것이다. 전국에서 단원 200여명이 참가했는데, 연주곡에 따라 무대 위에 세워진 LED 패널 55개에 각각의 연주 모습이 등장했다. 무대에는 지휘자만 실제로 등장하고 단원들의 연주는 이미 녹화한 뒤 합친 것이지만 어떤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LED를 활용해 다양한 연출을 시도함으로써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이기에 가능했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영향을 준 엘 시스테마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존립이 위태롭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란으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다. 권력자가 누구든 수완 좋게 엘 시스테마를 확장시켜온 아브레우 박사가 2018년 타계한 후 그 역할을 대신할 인물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간판스타인 두다멜은 2017년 마두로 정권의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을 비판하며 베네수엘라에 등을 돌린 상황이다.

사실 여러 나라에서 엘 시스테마의 영향으로 오케스트라 음악 교육 운동이 등장했지만 201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극단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편 차베스 정권이 엘 시스테마를 국가적 시스템으로 운영한 데다 아브레우 박사의 카리스마에 지나치게 의존했었다. 이런 구조에서 엘 시스테마가 사회정치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선 엘 시스테마를 벤치마킹하되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변형을 시켰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인 ‘꿈의 오케스트라’도 10주년을 맞아 안주하기보다 계속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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