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동안의 비결, 차 한 잔과 한 폭의 풍경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동안의 비결, 차 한 잔과 한 폭의 풍경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11-27 04:05

나이 들어 직업을 완전히 바꾼 사람을 연달아 알게 됐다. 한 분은 기업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중역까지 올랐고, 다른 한 분도 스스로 일군 사업에서 꽤 성공했던 이였다. 다만 두 사람 다 그 성공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심해 언제고 누군가 자신을 배신하거나 사고가 날까봐 항상 전전긍긍하고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분은 출장지에서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향기의 커피를 마신 순간, 또 한 분은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풍광을 맞닥뜨린 순간 인생의 방향을 바꿀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워낙 근성이 있는 분들이라 그런지 새 일도 어느새 자리를 잡아서 지금은 예전보다 벌이야 좀 줄었지만 가족과의 생활도, 삶의 질도, 건강도 모두 좋아졌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일을 바꾼 뒤 주변으로부터 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인상뿐만 아니라 관상과 운명까지 바뀐 것 같다고 한다. 한 분은 동창회를 나갔는데 동안수술을 한 동창생이 전혀 부럽지 않더란 밉지 않은 너스레까지 떨었다. 무엇보다 둘 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이전의 인생을 말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신이 나 보였다. 한 분은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다른 분도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건만, 본인이 지금 하는 일을 자랑하는 순간 그들의 얼굴은 어린이 표정 그 자체였다.

그분이 내려준 커피를 마실 때, 그분이 소개하는 풍광을 볼 때의 나는 그들의 충만함까지도 그대로 전달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둘을 만났던 것은 각각 다른 시기, 또 전혀 다른 장소였지만 오늘 왜인지 그 풍부한 향의 커피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향과 행복을 전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오늘따라 더 그리워서 그런 것 같다.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