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서 키운 꿈은 어쩌라고…응시 불가가 대책이냐”

국민일보

“노량진서 키운 꿈은 어쩌라고…응시 불가가 대책이냐”

학원 휴업에 공부할 곳 찾아 방황… 임용시험 사태에 정부 향해 분노

입력 2020-11-27 00:04
코로나19 확산으로 26일 문을 닫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앞을 한 수험생이 지나가고 있다. 아래 사진은 한 시민이 노량진 학원가를 지나는 모습. 최근 이 지역 한 학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학원과 독서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부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지만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일부 수험생은 학원과 독서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필기, 면접 등 중요한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확진 판정을 받은 수험생들이 대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량진 학원가는 26일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한산했다.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A학원은 물론 다른 학원들 역시 휴원 공지를 내걸었다. 수험생들로 북적거려야 할 인근 식당들도 조명만 켜 놓은 채 조용했다. 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량진을 떠나지 못한 몇몇 수험생들만이 거리를 오갔다. 대부분 한두 달 이내에 시험을 앞둔 이들이었다.

지난 21일 중등교원 임용시험 1차 필기를 봤다는 박모(28)씨는 내년 1월로 예정된 2차 면접 대비 스터디를 위해 노량진을 다시 찾았다. 박씨는 “너무 걱정되지만 이번이 첫 시험이라 2차 과목인 수업 실연을 준비해본 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스터디를 마치고 곧장 면접 대비 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면접 학원은 일대일 첨삭으로 진행돼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조심하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3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30)씨는 다니던 학원이 2주간 휴원하는 바람에 독서실을 찾는다고 했다. 이씨는 “자취방이 비좁은 데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워 공부할 만한 곳을 찾으러 나왔다”며 “돌아보니 독서실도 문 닫은 곳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감염이 걱정되지 않으냐’는 질문에 “코로나19도 불안하지만 수험생 입장에선 시험을 앞두고 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불안하다”며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거의 1년이 됐는데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날 만난 일부 수험생은 앞서 노량진 학원 관련 확진자 67명이 임용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것을 두고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인 만큼 ‘응시 불가’가 아니라 당국이 별도 시험장을 마련하거나 재시험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용시험 수험생 유모(29)씨는 “시험 전날 갑자기 집단감염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에 정부가 대책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수능처럼 확진자가 병원 등 별도 시험장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한다든지, 거리두기 기준처럼 일정 연기·재시험 등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줘야지 시험 자격을 박탈하는 건 수험생 본인이 다 책임지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확진 판정을 받아 임용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수험생 가운데 20여명은 지난 22일 ‘임용단기 코로나 피해자 모임’을 꾸리고 사실관계를 수집해 정리하는 등 학원과 당국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A학원 측이 평소 방역조치에 소홀해 확산을 키웠고, 정부도 ‘확진자 응시 불가’ 원칙만 고수해 확진 수험생이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진단검사 결과를 받지 않아 시험을 볼 수 있었던 응시자가 뒤늦게 양성 판정을 받는 등 형평성 논란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A학원에서 수업을 들어 자가격리 대상에 포함된 수험생 이모(31)씨는 “한 건물에서 수백명이 듣는 대형강의인데 환기, 가림막 설치 등 기본적인 방역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터넷 강의를 제공해 달라는 수험생의 요구를 무시하고 현장강의만 고집해 위험을 키운 학원 측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A학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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