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분별력 있는 중도층의 생각은…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분별력 있는 중도층의 생각은…

입력 2020-12-08 04:01
플랜B 없는 정치는 합리적 중도층을 모욕하는 행위

중도층은 사안마다 진영 논리 떠나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
찬반 결정할 능력 갖춰

정치적 고비마다 분별력 있는 중도층이
결정력을 행사할 가능성 높아질 것


지난해 가을에는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사태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라를 두 쪽 내더니, 올해는 법무부 장관 추미애와 검찰총장 윤석열이 나라를 가른다. 두 사람 주연에 법무당과 검찰당의 조직원 다수가 조연으로 출연했다. 대통령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려다 관객들이 하도 ‘등장, 등장’ 소리쳐대니 7일 간단히 사과는 했다. 모두 호랑이 등에 탔으니 내가 살기 위해선 불문곡직, 안면몰수 그대로 질주하는 수밖에 없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면 호랑이에게 물려 죽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작금의 사태는 ‘플랜B 없는 권력’에서 출발한다. 정치는 대안의 예술이다. 이해충돌이 살벌하게 발생하는데 플랜B가 없다는 건 파국을 뜻한다. 이런 상황은 대개 무능을 먹고 자란다. 1996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새벽에 신한국당의 노동법·안전기획부법 날치기, 2004년 열린우리당의 4대 입법 폭주 같은 ‘플랜B 없음’이 집권 세력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가.

정치에서 플랜B가 없다는 건 합리적 중도층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짓이다. 비판에도 애정 어린 비판이 있고, 증오가 밴 비난이 있다.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건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의도적으로 구별하지 않기도 한다. 뭔가 딴생각이 있어서 그럴 게다. 포기하지 못할 어떤 기득권 때문이겠다. 권력 획득은 결국 머릿수 확보 경쟁이다. 자기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건설적인 비판자까지 싸잡아 적으로 매도하는 건 참 쉽다. 명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만을 위한 정치일 뿐이다.

대통령 지지율 40%가 처음으로 무너졌다는 지난주부터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동안 중도층이 떠나간다는 신호는 여러 경로를 통해 표출됐다. 추세가 그랬다. 어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을 해임하면 다시 결집할 것이라고 했다. 틀렸다. 위기의식으로 핵심 소수의 결집 강도는 강해지겠지만, 머릿수 확보에선 한계점이 더욱 뚜렷해질 게다.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정책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건 천부적 권리다. 정치적 선호는 자신과 의견을 달리해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정권 교체를 몇 차례 경험한 중도층은 그 기준을 합리와 상식, 이성에 둔다. 그리고 진영 논리보다는 사안마다 합리적 기준을 생각한다. 추미애를 비판한다고 오만한 검찰을 개혁하자는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플랜B 없는 권력은 ‘아직도 야당 지지하니’ 비아냥댄다. 그러니 중도층이 진짜 떠나는 것이다. 이쯤에서 중도층이 진짜 화났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소수 강경파는 기득권 놓치지 않으려고 더 기를 쓴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편리한 도구로 최소한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정권교체와 정치적 사건들로 중도층은 구별해서 생각하는 능력을 갖췄다. 그 방향으로 진화도 한다. 검찰 개혁을 꼭 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지만, 그것을 윤석열 찍어내기라는 어설픈 꼼수로 치환하는 것까지 용인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윤석열 내보내면 검찰 개혁이 다 이뤄지나. 누가 봐도 검찰의 독립성·중립성 확보가 아니라 자기편 예속이 목적이라고 느낀다. 울산 선거 부정 의혹이나 원전 경제성 왜곡 의혹에 대한 수사 방해로 느낀다. 다수가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다. 검찰 개혁의 지향점인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반도 가지 못했다. 목적과 수단이 뒤죽박죽이다. 검찰 개혁이 완전히 굴절됐다. 플랜B 자체를 악의 공격에 따른 수정주의적 패퇴쯤으로 여기는 운동권 방식의 정치가 이젠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당한 것은 그의 무능과 봉건적 퇴행도 있었지만, 선거와 집권 과정에서 그걸 모를 리 없는 핵심들이 방조, 조장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기울기 시작한 징조는 조국 사태 때 처음 나타났고, 1년 뒤 추·윤 사태가 결정적이었다는 훗날 평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가 일이 망가진 뒤 “사실 그때 내가 경고하려 했는데…”라는 ‘애빌린의 역설’을 밟지 않길 바란다.

헤겔의 역사반복주의에 덧붙여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비극적 사건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나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이어진다는 뜻이겠다. 검찰 개혁이 한바탕 희극으로 끝날까 두렵다.

편집인 m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