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공수처가 불편한 사람들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공수처가 불편한 사람들

입력 2020-12-16 04:01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검사 술 접대 사건’ 수사 결과
그동안 검찰이 수수방관하던 검사 비리 단죄할 수 있는
가능성 열어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 충분

‘교활하다’ ‘낯 두껍다’ ‘세상 무서운지 모른다’.

지난주 검찰의 ‘김봉현, 검사 술접대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든 검찰에 대한 단상이다. 검찰은 라임사건의 핵심인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술접대를 받은 검사 3명 가운데 1명을 기소하고 2명은 불기소했다. 그 기준을 가른 검찰의 기술은 가히 신공에 가깝다.

검찰 수사 결과 술자리를 함께한 사람은 김 전 회장과 검사 3명을 포함해 5명이고, 술값은 총 536만원이 결제됐다. 검사 2명은 당일 밤 11시 전에 귀가했고, 다른 검사 1명은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 귀가 시간이 검사들의 운명을 갈랐다. 술값을 일반적인 1/n로 계산하면 1인당 107만원인데 검찰의 계산법은 달랐다. 일찍 귀가한 검사 2명의 경우 2시간의 접대비를 제외하고 술값을 각각 96만원으로 계산했다. 김영란법이 정한 접대 금액 한도 100만원을 넘지 않게 절묘하게 꿰맞췄다. 검찰 계산법에 따라 2시간 술을 더 마신 검사만 기소됐다.

검찰은 이 검사를 기소하면서 김영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보다 형량이 훨씬 무거운 뇌물죄를 적용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처럼 뇌물로도, 향응으로도 볼 수 있는 경우 검찰은 대개 형량이 높은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하고 주위적 공소사실의 무죄 선고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하는데 하지 않았다.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게 천운이다. 김 전 회장이 처음 술접대 사실을 폭로했을 때 ‘사기꾼의 흔한 거짓말’로 묵살하려는 분위기가 검찰 내부에 흘렀다. 이후 김 전 회장이 접대 날짜와 접대한 검사를 특정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처럼 흐지부지 종결됐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조국 전 장관은 티끌까지 탈탈 털어 기소하면서 검찰의 제 식구 수사는 이렇게 관대하고 너그러울 수 없다. 검찰만 누리는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의 폐해다.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에 그 이유가 매우 적확하게 묘사돼 있다. “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수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검사들은 ‘국민을 배반할 것인가, 검찰을 배반할 것인가’ 진퇴양난에 빠진다. 국민을 배반할 경우 잠시 욕이나 들어먹으면 그만이지만 검찰을 배반할 경우 조직 내 인사는 물론 변호사 개업을 할 경우의 밥벌이까지 포기해야 하므로 국민을 배반하는 쪽이 훨씬 쉬운 선택이 된다.”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곧 출범할 공수처가 정권 홍위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일부 시선이 존재한다. 그럴 거면 굳이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패스트트랙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면서까지 공수처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력의 입맛에 맞고 공수처장에 비해 임명절차도 까다롭지 않은 검찰총장을 앉혀 김기춘·우병우식으로 검찰을 장악, 운영하면 금상첨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피의자 우병우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깍듯이 그를 모시는 검사처럼 기존 검찰을 길들이는 게 훨씬 용이하다.

공수처 출범으로 국가 사정 기관의 수사권 총량이 늘거나 줄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검찰이 누렸던 수사권과 기소권 일부를 공수처에 넘기는 것뿐이다. 조국 수사로 보여준 살아있는 권력보다 센 검찰 권력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니 검찰로서는 고까울 거다. 2012년 잇달아 터진 검찰 내부 비리를 계기로 대검 중수부 폐지를 추진했던 한상대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장본인은 검찰 구성원이었다. 검찰의 힘을 빼려는 자는 현직 총장이라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검찰의 조직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결국 그는 임기를 못 채우고 도중하차한 11번째 총장이 됐다.

수사권에 기소권까지 우리나라 검찰은 세계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런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검찰총장은 법무장관 부하가 아니다”며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비리가 있어도 스스로 무혐의 처리하면 그만이니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도 두렵지 않다. 검찰이 스스로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스스로 개혁할 가능성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면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변하게 해야 한다. 이제 검찰도 잘못하면 단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만으로도 공수처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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