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주가 3000 안착하려면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주가 3000 안착하려면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입력 2020-12-17 04:04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주가지수 목표를 언급하지 않았다. 경제정책의 가시적 성과가 나면 자연스레 증시에 반영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2007년과 2012년 12월 대선 직전 증권사와 거래소로 달려가 코스피 3000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코스피는 각각 1920, 1980선으로 3000선은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전원책 변호사는 2009년 1월 MBC ‘100분 토론’에서 당시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주가 3000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은 대단히 경망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만큼 현직 대통령의 주가 목표 발언은 민감한 사안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주가를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의 좋은 경제 흐름을 언급하며 이례적으로 주가를 언급하자 ‘주가 3000 발언’의 원조 격인 두 전직 대통령이 몸담았던 야당에서 난리가 났다. 문 대통령은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주가 3000’시대 개막에 대한 희망적 전망까지 나온다”면서 “기업의 현재 실적과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주가 상승세는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라고 평가했다. 목표치를 언급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전망을 전달하는 간접화법을 취했다. 요즘 부동산 정책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정부 입장에서는 주식시장이 그나마 기댈 언덕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해외에서 저평가돼 있던 한국경제가 제대로 평가받는 분위기인 데다 요즘 파죽지세인 주가에 이런 흐름이 반영돼 있다는 인식이 깔린 듯하다.

한화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주가지수산출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달러지수를 기준으로 올해 한국 주식시장은 35% 올라 주요 20개국(G20)에 속한 15개국 주식시장 중 1위를 기록했다. 1998년 이후 22년 만에 1위다.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도 15일 ‘코스피 최고치 경신, 현재와 미래를 논하다’라는 주제를 내건 토론회까지 여는 등 잔치 분위기다. 월가는 내년 한국시장을 더 희망적으로 본다. 씨티그룹은 내년도 한국 증시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이 무려 43%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코스피도 2000선을 밑돌던 전직 대통령 때와 달리 최근 2700고지를 거뜬히 올라서 지수만 놓고 보면 3000고지도 능선 한두 개만 넘으면 곧 닿을 수 있을 듯한 모습이다.

여기서 잠깐. 문 대통령 발언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는 차치하고, 3000 달성 축하 샴페인을 터트리기 전 냉정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지난 3월 최저점 이후 증시 반등이 100% 한국경제의 건강성 내지는 동학개미 덕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몰린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평상시 같으면 정리됐어야 할 좀비기업들이 우량기업과 뒤섞여 있다. 빚감당 못하는 기업들을 미리 솎아내지 못할 경우 주가 3000고지에 오르기도 전에 산사태가 동학개미들을 덮칠지도 모른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38% 오른 한국 주식시장은 99년에도 정보기술(IT) 버블로 인해 90% 올랐지만 2000년에 반토막 났던 쓰라린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코로나 금융지원 조치의 연착륙 방안과 기업 구조조정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신호다. 3000시대 안착을 위해서라도 금융 수장들의 우려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