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당근이세요?

국민일보

[혜윰노트] 당근이세요?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입력 2020-12-18 04:09

요즘 중고거래 앱이 핫하다. 내 곁에도 쓰던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친구는 만수무강을 비는 조형물처럼 거실 복판에 서 있기만 하던 사이클 머신을 내다 팔고 개운해했다. 또 다른 친구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외투가 앱에 뜬 것을 발견하고 잽싸게 낚아챘다. 돌아서면 자라 있는 아기를 키우는 남동생 부부는 낯선 동네에 가면 그 지역 매물을 습관적으로 살피는 중고거래의 달인이 됐다. 이러다 보니 역 앞에 서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당근이세요?’ 하고 묻는다는 농담이 현실로 다가온다.

나 역시 몇 가지 물품을 팔아봤다. 내가 처음으로 판매한 제품은 인조 손톱 세트다. 광고 일을 하며 스터디 차원에서 구비한 제품인데 매일 연필을 움켜쥐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써야 하는 나에겐 무용지물이었다. 내 집에서 먼지를 얹고 빛이 바래가기보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큐빅을 빛내는 편이 낫겠다 싶어 내놓았는데 순식간에 팔렸다. 첫 판매다 보니 정성껏 포장했다가, 내용물을 확인하기 쉬운 게 나을 성싶어 포장을 풀었다가, 이래저래 홀로 부산했는데 정작 구매자는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창문 너머 물품을 건네받고 5초 만에 사라졌다. 참 쿨한 분이었지만 나의 매너온도는 확실히 올려주셨다.

다음으로 팔아본 건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구입했던 전기밥솥이다. 압력도 되지 않는 소박한 모델인데 수년간 잘 썼지만 근래 요리에 관심이 많아져서 밥맛에 아쉬움을 느끼던 차였다. 이 녀석의 처분을 고심하며 소형가전 폐기하는 방법 등을 알아보다 중고마켓을 떠올렸다. 양심상 쌀알에 긁힌 자국들과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물때도 속속들이 찍어 올렸다. 사용한 티가 역력해서 과연 팔리려나 싶었는데 금액이 저렴해 그런가 금세 연락이 왔다. 구매자가 원하는 거래장소가 제법 멀어서 나는 자전거에 밥솥을 동여매고 달려갔다. 이번 구매자 역시 별다른 확인 없이 밥솥을 껴안고 사라졌다.

세 번째로 팔아본 건 특정 캐릭터 머그컵들이다. 나는 컵이나 잔을 좋아해서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모으고 또 모으다 보니 찬장이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다 품고 살기는 무리라는 생각에 공들여 사진을 찍고, 나처럼 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이 역시 며칠 만에 연락이 왔고 나는 집 근처 전철역에서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물품을 건넸다. 또래 여자분이 봉투에 담아오지 못해 죄송하다며 지폐를 건넸다. 나는 ‘어차피 지갑에 넣을 건데요’ 하고 미소로 답하며 돈을 받았다.

이게 내 세 건의 중고거래 이력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하등 소용이 되지 못하는 것을 팔았다. 그저 자리만 차지하던 것이 사라져 후련했다. 두 번째로는 오래 써서 낡고 닳은 물건을 팔았다. 은퇴 직전의 사물에게 새로 일자리를 찾아주어 뿌듯했다. 마지막으로는 마음은 남아 있지만 더 감당하기 힘든 품목을 팔았다. 나처럼 그 녀석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업어갔다 생각하니 훈훈했다.

지구를 장악한 역병 때문에 나는 새로운 사교는커녕 친밀한 이들과도 거리를 두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 십여 초 남짓이나마 이웃과 만나 눈인사와 함께 물건을 주고받으며 이런 실감을 한다. 우리 모두 마스크 너머 꼬물꼬물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마치 누구도 마주치지 않아 사람이 사는 게 맞나 생각하다 아파트단지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나에겐 손톱만큼의 애정도 받지 못했던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은 누군가의 손끝에서 고운 자태를 뽐낼 것이고, 폐기될 뻔했던 밥솥은 어느 집에서 고소한 밥 내음을 뿜을 것이고, 귀여운 캐릭터가 웃고 있는 머그컵은 누군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체온을 재는 시절이고 온도가 올라가면 겁부터 덜컥 나는 시절이다. 나는 중고품을 팔고 사며 마음의 온도나마 걱정 없이 올려본다. 나는 현재 37도이고 더 뜨거워지고 싶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