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검찰 개혁? 이 정권은 말할 자격을 잃었다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검찰 개혁? 이 정권은 말할 자격을 잃었다

입력 2020-12-18 04:01

윤석열 징계 신속히 재가하며 그냥 서명만 한 거라는 靑
끝까지 거리 둔 대통령 모습은 별로 떳떳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 검찰 개혁을 위해서 총장을 내보내야 하는 거라면 왜 직접 국민 설득하지 못하나
정권이 말하는 검찰 개혁은 본뜻과 반대로 왜곡돼 있다 그래서 무리수 두는 것일 게다

대통령의 침묵은 지난 몇 달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지속될 때 문재인 대통령은 조정을 하는 대신 거리를 뒀다. 결국 윤 총장을 징계하겠다고 했을 때, 법원이 막아섰지만 기어이 밀어붙일 때에도 침묵을 깨지 않았다. 징계위원장을 대신 맡을 차관이 사표를 내자 신속히 채워주는 모습에서 넘겨짚을 순 있었는데, 추측일 뿐이었다. 침묵에 담긴 뜻은 12월 16일에야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 징계 청구를 재가했다. 아주 신속하게.

이번에도 진솔한 설명은 없었다. 대신 꽤 분명한 시그널을 줬다. 추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을 추켜세웠고 “검찰총장에 대한 혼란을 일단락 지어” 새 출발을 하자고 했다. 윤 총장에게 나가라고 한 셈이다. 여권 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윤석열 사퇴를 외치고 나섰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재가를 위해 마련한 ‘무대’는 좀 구차했다. 소통수석과 대변인은 “검사징계법에 따라 대통령은 징계안을 그대로 재가할 뿐 거부나 가감할 수 없다”고 연일 강조했다. 대통령이 서명해야 효력이 생기는데 그 서명의 힘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검찰총장 징계에서 대통령은 거수기일 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추 장관 손을 들어준 신속한 재가를 통해, 거수기를 자임한 수동적 재가를 통해 그간의 침묵에 담겼던 속내가 드러났다. “윤석열을 내보내고 싶다. 그런데 내가 하기는 싫다.” 많은 사람이 그러리라 했지만 그래도 뭔가 심오한 뜻이 있지 않겠나 싶었던 침묵은 결국 그거였다.

여전히 남는 궁금증은 도대체 왜 윤 총장을 내보내려 하는가, 그것은 정말 검찰 개혁을 위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 적 없는 사람에게 “왜 안 한다고 말하지 않느냐”며 따지는 수준의 징계 사유가 그를 내보내려는 진짜 이유일 리는 없다. 여권 사람들의 입버릇처럼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윤 총장이 개혁을 방해하고 있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분산하고, 직접 수사권을 제한하고, 감시를 받게 하는 제도 개혁은 지난해 이미 완료됐다. 공수처 출범에 제동을 건 것도 야당이지, 윤 총장에겐 그럴 힘과 권한 자체가 없었다. 여당은 야당의 비토권마저 의석수로 무력화했고 공수처는 곧 출범하게 됐다. 추 장관이 지휘권과 인사권을 휘둘러 검찰 내부 조직을 마구 뜯어고칠 때에도 윤 총장은 저항하지 못했다. 총장과 한마디 상의 없이 이뤄진 검찰 인사와 조직 개편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가 하던 것은 수사밖에 없었다. 그 수사 중에 울산 선거, 월성원전 등 정권을 겨냥한 몇 가지가 있고, 그것 때문에 쫓아내려 한다는 분석을 저 초라한 징계 사유와 무리한 징계 과정은 오히려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수사는 문 대통령이 시킨 거였다.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 했던 임명 당시의 말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서 회자된다. 추·윤 갈등에 대한 대통령의 거리두기는 이 말을 뒤집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검찰 개혁은 많은 국민이 지지하는 가치다. 정말 검찰 개혁을 위해 윤 총장 퇴진이 필요한 거라면 그 사정을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 기관 간 싸움을 이토록 방치하며 그렇게 오랜 시간 침묵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의 침묵은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때문임을 방증한다. 이는 다시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 개혁의 지향점이 ‘내 권력을 수사하지 않는 검찰’임을 웅변하고 있다.

검찰 개혁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말할 순 없으니 이 정권 사람들은 ‘민주적 통제’라는 꽤 멋진 말을 갖다 붙였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검찰은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선출된 권력이었다. 그 정권의 검찰이 권력의 통제를 받아 수사했다며 적폐라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외치더니 이제는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고 또 검찰 개혁을 말하고 있다. 선출된 남의 권력과 선출된 내 권력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내로남불이 이 말에도 숨어 있다. 진보 인사들이 ‘검찰공화국, 대한민국’(2011, 삼인)을 펴내며 주장했던 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은 지금 정반대로 왜곡돼 있다. 이 정권은 검찰 개혁을 말할 자격을 잃었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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